#월화드라마
982021.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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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봄] 홍사장은 누굴까?

홍사장. 그는 누구일까? 사실 처음에 극이 진행될 때까지만해도 그냥 미란이를 좋아하는 짝사랑 아저씨,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난 4회 엔딩 부분의 흐름을 보고 마음이 좀 찝찝해졌다. 과거 최정민이 머물렀던 종교단체는 아이들을 감금하고 불법 입양을 시키기도 하고 학대하기도 하는 비정상적인 곳이었다. 이정범 형사를 죽인 진범이 최정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있는 고형사는 그 지점에 대해 조사한다. 그리고 당시 이 보육시설에서 입양 간 아이들의 명단을 입수하게 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명단 속 아이들은 모두 홍씨이다. 목사가 김 씨인데 아이들은 홍씨인 이유가 뭘까. 함께 명단을 살피던 고형사와 영도는 의아함을 갖는다. 근데 문득 그 시점에 머릿속에 미란의 썸남 '홍사장'이 쓱 스쳐지나갔다. 물론 그냥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하지만 왠지 미란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그 홍사장과 과거의 사건이 연관성이 있을 것만 같은 불안한 느낌. 무엇보다 홍사장의 존재가 반복적으로 언급은 되면서도 4회동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도 이제와 생각하니 좀 수상하다. 정말 홍사장 이 사람은 누구일까? 난 그냥 미란이가 홍사장에게 사랑받으면서 나중에는 피잣집에서 데이트하는 그런 장면을 바랐다. 정말 그랬다고. 아니 세상에 그냥 도란도란 귤 까먹는 삶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되겠니 정말. 너는 나의 봄 연출 정지현 출연 서현진, 김동욱, 윤박, 남규리, ...

2021.07.15
[리뷰클립] 어쩌면 멸망에게 이름이란 건

세상 모든 것에는 고유의 명칭이 있다. 책상이나 침대, 선풍기나 리모컨, 바위나 나무나 꽃같은, 뭐 그런 것. 인간은 세상의 있는 많은 것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사람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모두가 사람이다. 그 중 누군가 한 사람을 부를 필요가 없다면, 우리 모두에게도 그저 '사람'이라는 명칭 하나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알고있듯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수 많은 사람 중 내가 아는 '너'는 한 사람 뿐이니까. 그러니 누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름을 붙이는 까닭은 수 많은 사람 중에 '너'를 부르기 위함이다. 저 멀리에서도 누군가 부르면 돌아볼 수 있도록. 그런 의미에서 멸망에겐 다른 이름이 필요치 않았다. 신이 그저 신일 뿐인 것처럼, 멸망도 그저 멸망으로 족했기 때문이다. 어떤 누구도 굳이 멸망이 어떤 존재인지 구분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멸망은 그저 죽음이고 끝이고 그 외의 모든 나중일 뿐이었으니까. 사람들에게 멸망이란 그저 주변에 있는 사물과 다름 없는 존재였다. 우리는 책상을 책상이라 이름지었지만 책상에게 책상아, 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멸망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지칭할 용어가 필요하긴 했으나 그를 부를 이름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던 까닭에. 멸망은 한 때 사람 사이에 섞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를 불러주는 곳도 돌아갈 곳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택했다. ...

2021.06.12
[리뷰클립]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 빛의 마지막 자리, 어둠의 첫번째 자리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 빛의 마지막 자리, 어둠의 첫번째 자리 멸망에게 동경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삶'이다. 어제, 소녀신은 동경을 멸망의 현관으로 안내했다. 처음 멸망이 불쑥 동경의 현관으로 들어온 그 날처럼. 살아있는 동경에게 어느 날 불쑥 멸망이 찾아왔듯, 어둠과 끝뿐인 멸망에게 최초로 생이 찾아온 것이다. 뭐라 이름붙일 수 없는 감정을 차마 사랑이라 부르지도 못해, 멸망은 자기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붙인다. 탁동경, 하는 부름은 이제 멸망에게 생과 사랑 그 자체이다. 아마도 지금 그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그렇게 부를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일 테다. 잠시 소녀신이 세상에서 앗아갔을 때의 두려움. 멸망은 그 두려움을 안고 다시 영원을 존재할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엔딩, 동경의 뒤에 선 멸망의 모습은 더욱 서글펐다. 이모는 동경의 인생에서 행운과 희망을 의미한다.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를 잃었을 때, 행운은 상실의 슬픔과 같은 얼굴을 한 채 나타나 동경을 안아주었다. 동경의 뒤에 선 멸망이 지금 그녀의 삶에 사랑인 동시에 멸망이라면, 이모는 동경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첫번째 멸망 뒤에 찾아온 새로운 희망이었다. 멸망은 저만치 희망을 마주한 동경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동경. 그 중 멸망은 죽음과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빛의 마지막 자리, 어둠의 첫번째 자리. 멸망은 거기...

2021.06.02
[리뷰클립] 어쩌면 소녀신이 멸망에게 바라는 건

멸망은 사람들의 어두운 소망에 대해 알고 있다. 누군가가 망하기를 바랐으면 하는 질투, 뭔가를 뺏고 싶은 시기와 욕심, 세상 모든 것들을 자기 중심으로 계산하는 오만함. 그렇기에 뭔가를 멸망시켜야 한다면 그건 이 세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지루하고 환멸나는 저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나도 그런식으로 사라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연 그 생각은 진심이었을까. 죽어가는 것들을 지켜보는 것,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일부 가지고 있는 것. 멸망의 존재는 그런 식으로 설계되었다. 나의 눈빛과 움직임 하나에 스러지는 생명들을 보는 건 멸망에게 어떤 일이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미워하는 건 어쩌면 멸망이 영원을 존재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고. 나의 존재로 하여 선량하고 연악한 것들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괴롭고 아파서. 죽어가는 존재를 연민하라는 신의 말은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멸망에겐 가혹행위였다. 나로 인해 죽어가는 것들을 가여워하라니. 그게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어쩌면 소녀신은 그런 멸망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경멸하고 미워하는 세상을 사실 너는 사랑하고 싶다는 걸. 죽음인 멸망은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연민도 슬픔도 자기 안에서 치워버렸다. 신이 그렇게 설계한 게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정했다. 그러나 그토록 미워하는 건 사실, 사랑하...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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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클립] 어쩌면 '멸망'의 리셋이란 건

검색창에 RESET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흔히 '리셋'이라고 하면 컴퓨터 재부팅(...) 정도만 생각했던 나는 드라마 속 소녀신이 말한 리셋이 '다시 시작하다'의 의미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대체 뭘 다시 시작한다는 거야??에 물음표가 찍혀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리셋은 엄밀히 말해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전적 의미로 그것은, 다시 맞춘다는, 즉 재정비한다는 뜻에 더 가깝다. 소녀신은 말했다. 시스템을 어지럽힌다는 건 잘못 프로그래밍되었다는 의미라고. 잘못된 것은 삭제하거나. 리셋해야 하는 거라고. 믈론 리셋에는 '0'으로 되돌린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0으로 되돌리는 방법이 과연 지우고 시작하는 방식만 있는 걸까. 만약 소녀신이 그런 식으로 뭔가를 다시 시작하고자 했다면 현재의 멸망을 없애고 또 다른 멸망을 만드는게 낫지 않았을까? 즉 소녀신이 말한 리셋은 '또 다른 시작'이라기 보다 현재 프로그램의 새로운 세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현재의 프로그램을 재정비하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예고편의 내용을 미루어보면, 소녀신은 일부러 동경의 과거를 멸망에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멸망이 동경에게서 과거에 앗아갔던 모든 것들을 다시금 곱씹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세상을 떠난 동경의 부모님과, 어느 순간 멸망해버린 동경의 행복같은 것. 신과 멸망은 내내 말해왔다. 세상의 모든...

2021.05.27
Q. 삶을 동경하는 멸망, 둘에 대한 물음표

현재 블로그에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리뷰를 올리고 있는데요. 몇몇 분들이 멸망과 동경 사이의 계약 조건에 대한 질문들을 댓글에 주셨더라구요. 사실 저는 씽크빅 돋는 다른 리뷰어님들과 달리 감정선 따라가기 급급한 시청자라(...)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짧게 정리하는 글을 읽으면 두루두루 함께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멸망과 동경 사이의 계약 조건은 크게 세가지인데요. 1. 멸망은 동경이 죽을 때까지 100일 동안 병으로 인한 통증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그녀가 원하는 소원을 하나 이루어준다. 2. 대신 동경은 죽기 전에 세상의 멸망을 소원해야 한다. 3. 만약 동경이 세상의 멸망을 빌지 않을 경우, 동경 대신 동경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 멸망이 동경과 이런 계약을 맺은 것은, 세상을 멸망시키고 자기 존재를 없애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그는 스스로 죽을 수도 사라질 수도 없는 존재이죠. 그래서 세상이 사라지면 혹시 자기도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보았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의 입장에선 별 미련 없던 세상에, 미련을 가질만한 존재가 생겼기 떄문이죠. 본래 세상에 있는 그 누구도 멸망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사람들에게는 각기 다른 얼굴로 보여졌기 때문에, 진짜 멸망의 얼굴을 아는 존재는 오직 신과 멸...

2021.05.26
[리뷰클립] 드라마 속 '멸망'이 읽고 있던 책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 리셋의 의미는 뭘까?

지난 회차부터 멸망이 읽고 있는 시집이 내내 눈에 띠었다.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워낙 좋아하는 시집이라 가끔 펼쳐보곤 하는 책인데, 드라마 속 멸망이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좀 새롭기도 했다. 하긴 기형도 시인이야 워낙 유명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작가이니, 드라마에 등장하는 것이 놀랍거나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기도 하다. 어제의 엔딩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도 하고, 멸망과 저 시집을 연결해보자니 생각나는 구절들이 있어서 오랜만에 책을 꺼내 페이지를 뒤적였다. 그 중 드라마 속 멸망의 감정과 비슷하다고 느낀 시구 몇 개를 여기에 옮겨둔다.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 기형도, 시 '오래된 서적' 中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떄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 했다 (중략)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 기형도, 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中 나의 생은 미친 ...

2021.05.26
[리뷰클립] 어쩌면 너는 미래에서 온 멸망일까?

마지막 장면, 버스 정류장에서 동경을 기다리고 있는 멸망은 어딘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일부러 무심하게 동경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 평소보다 훨씬 무뚝뚝하게 구는 행동도 그렇고. 쓸데없는 온갖 데에 능력을 남용하며 나를 사랑하라고 능청을 부리던 지금까지 모습과는 사뭇 다른 톤의 분위기였달까. 비오는 날 인생을 한탄하는 동경의 손을 붙잡고, 굳이 멈출 수 있는 빗속을 '재미삼아' 달리는 그의 모습 역시 낯설었다. 멸망은 세상을 환멸하면 했지 재미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쏟아지는 비는 별 게 아니라고, 이렇게 빗속을 달려서 오면 금세 집이라고 얘기하는 그의 말 역시, 영원을 회의주의자로 존재해온 그의 입에서 나오기엔 지나치게 따뜻했다. 특히 마지막 순간,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소원을 비는 동경을 바라보며 차마 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맞추는 장면도. 한숨 뭐야. 눈빛 뭔데. 이건 뭐 숨결부터 사연과 서사가 가득하잖아. 그래서 생각했다. 혹시 마지막 장면의 멸망은 현재의 멸망이 아니지 않을까. 버스정류장에서 동경을 기다리던 그는 어쩌면 동경을 미치게 사랑하고 있는 미래에서 온 멸망이 아닐까. 소녀신의 말대로 인간의 사랑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때로 하나를 위해 전부를 버릴 수 있을만큼. 그러므로 멸망을 사랑하게 된 동경 역시 결국 마지막엔 세상이 아닌 멸망을 선택하게 되는 것...

2021.05.26
[드라마리뷰] 나빌레라 - 날아올랐어?

나빌레라 - 날아올랐어? 병원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그 날, 덕출은 오래도록 공원에 앉아있었다. 유난히 하늘이 맑았고, 날이 좋았던 그 날. 공원을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덕출이 떠올린 건 아주 오래 전 어느 날이었다. 아직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던 때.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앉아 해맑게 웃으며 외출하던 그 날. 눈을 맞추는 어머니의 미소와 가만히 자신을 내려다보던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 책임질 것이 없어 몸이 가볍고 세상의 햇살이 온통 나의 것 같았던 유년 시절. 늙어가는 모든 것들은 한 때 이제 막 피어오르는 씨앗이었다. 드라마 <나빌레라>는 일흔의 덕출이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꿈에 다시금 한 발 다가서는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건 단지 다시 ‘시작해보고자’하는 용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 일생 싹 틔우지 못한 씨앗 하나를 죽는 순간까지 피워보고자 했던 그의 절박함이었다. 지워지는 기억과 함께 자기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심덕출’이라는 존재로서 한번쯤은 날아오르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의지였던 것이다. 극은 덕출과 채록,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원하는 삶의 방향을 묻는다. 당신이 가진 가장 피우고 싶은 씨앗은 무엇이었냐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쪽을 향해 걸음을 디뎌보라고. 당신도, 날아오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극은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 반드시 불행하...

2021.05.10
[드라마리뷰] 나빌레라 9회 - 끝까지 맞서 싸우는 당신에게 + 10회 예고

나빌레라 9회 - 끝까지 맞서 싸우는 당신에게 성관은 카메라 속의 아버지가 좀 낯설다. 채록에게 아버지의 병을 전해들었을 때, 성관의 손에 있던 담배꽁초는 그가 신고 있던 크룩스 위로 툭 떨어졌다. 성관이 한 겨울에도 크룩스를 신고 다니는 것은 과거 환자를 잃었던 최악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그가 간직한 최악의 기억 위로 툭 떨어지며 스러지는 불꽃. 그것은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된 성관의 마음 같기도, 이제 점차 스러져가는 덕출의 기억같기도 했다. 채록의 말처럼, 아직 병을 밝히지 않으려는 아버지에게 무턱대고 사실대로 말하라 다그칠 수는 없었다. 그건 아버지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대신 그는 다큐를 찍으려 멀리 떠나려했던 계획을 철회하고, 덕출의 곁에 머물기로 한다. 일흔의 나이에 발레를 시작한 아버지를 다큐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성관이 덕출의 곁에서 카메라를 든 까닭이 정말 다큐를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그저 아버지를 보호하기 위한 핑계였을 뿐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어떤 의도에서였든, 성관은 카메라를 들고 처음으로 아버지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나의 아버지가 아닌 인간 ‘심덕출’의 모습. 그건 지금껏 성관이 보아온 아버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저는요, 아버지가 늘 지는 사람 같았어요. 엄마한테도 그렇고, 집배원했을 때도 그랬고, 우리 집이 어려웠던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생각...

2021.04.20
[드라마리뷰] 나빌레라 7회 8회 - 당신을 부르는 춤 + 9회 예고

나빌레라 7회 8회 - 당신을 부르는 춤 덕출은 조금씩 자신과 이별하는 중이다. 기억이 사라진다는 것, 지금껏 일구어온 삶이 내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소각되어간다는 것. 덕출은 그 병에 대한 이야기를 햇살이 아주 맑은 날 들었다.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화창했다. 눈부시게 화창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서글펐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삶의 생동하는 순간, 자신의 삶은 저물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라는 존재가 없던 듯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어서. 처음 채록을 보았던 그 날도 덕출은 기억을 잃었었다. 주변은 흐릿했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에 왜 와있는지조차 아득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그 뿌옇고 먹먹한 세상 속으로 불쑥 날아올랐다. 그건 아주 오래 전 보았던 아름다운 움직임과 닮아 있었다. 어린 날 우연히 발견한 극장에서 보았던 무용수의 도약. 사람이 새처럼 날아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고는 온통 마음을 빼앗겨버렸던 바로 그 순간. 어린 날 뭔가를 간절히 동경했던 그 마음과 함께 흐릿해진 세상에서 안개가 걷혔다. 그 날의 경험 이후 덕출은 발레를 하겠노라 마음 먹었다. 그렇게 마음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발레는 덕출이 평생 간직하고 살았던 이루지 못한 소망이자, 가끔 꽉 막힌 듯 닫혀버리는 세계를 열어주는 유일한 열쇠였기 때문이다. 우연히 덕출의 메모를 발견한 채록은 그간 덕출이 왜 그렇게 열심히 메모를 남겼는지, 왜 그...

2021.04.17
[드라마리뷰] 나빌레라 5회 6회 - 마음의 크기 + 8회 예고

나빌레라 5회 6회 - 마음의 크기 콩쿨을 앞 둔 채록은 한껏 예민해진다. 몸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덕출의 참견은 채록을 더 뾰족하게 만든다. 승주는 이 과정에서 덕출이 가진 조바심을 읽어낸다. 그는 조급한 덕출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일부러 덕출에게 정중한 쓴소리를 한다. 기본이 없다면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없다는 걸, 긴 시간 무용수로 살아온 그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승주는 이 시간을 소리와의 대화에서 ‘하농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피아노를 배울 때 가장 지루한 게 하농이지만, 하농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손가락에 힘이 고루 들어가지 않아 훌륭한 연주가 어려워진다고. 자신은 그저, 어르신이 하농의 시간을 제대로 보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 뿐이라고. 덕출은 이 과정 속에서 깨닫는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본인이 가장 중요한 분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하지만 그것을 깨달은 뒤에도 뒤이어 듣게 된 채록의 말들은 상처가 된다. 할아버지는 자신과 다르지 않느냐고. 그냥 취미로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느냐고. 채록이 홧김에 한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덕출은 그것을 그냥 넘길 수 없다. 그는 단 한 번도 재미나 가벼운 마음으로 연습실에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채록은 뒤늦게 자신이 덕출에게 큰 실례를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덕출과 자신의 입장이나 위치는 분명히 다르지만, 발레를 대하는 마음의...

2021.04.13
[드라마리뷰] 나빌레라 3회 4회 -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움

나빌레라 3회 4회 -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움 냉장고에는 엄마가 남긴 메모가 아직 남아있다. 아버지가 수감되고 어머니까지 돌아가신 뒤, 채록은 나름대로 혼자 자신의 삶을 잘 꾸려왔다. 하지만 괜찮아지려고 해도 과거의 상처는 불쑥불쑥 떠올라 채록의 일상을 헤집어놓곤 했다. 호범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묵묵히 참아낸 것도, 그 날들에 대한 가책이 남아서였다. 호범의 인생이 틀어진 것에 아버지의 책임이 있다면, 자신은 그 책임을 함께 감당해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니가 좋아보이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고 이건 불공평한 것 아니냐고 묻는 호범에게 채록은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못한다. 다만 혼자 남았을 때 조용히 그 말을 곱씹어볼 뿐이다. 정말로 내게 행복할 자격이 있는 건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의심하면서. 덕출은 그런 채록의 마음을 알아본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단정해보이는 모습 뒤에 숨겨진 채록의 내면을. 스스로조차 방치해서 이미 꽤 오래 곪아있는 마음의 상처를 그는 바로 본다. 하지만 그는 함부로 그 상처를 아는 척하지도, 위로하려들지도 않는다. 다만 어른의 마음으로 묵묵히 채록의 곁에서 그를 돌볼 뿐이다. 누군가의 돌봄의 손길이 닿은 것은 채록에게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길 바란 적은 없었다. 괜한 동정을 사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출소와 맞물려 엉망이 된 일상에 닿은...

2021.04.13
[드라마리뷰] 나빌레라 1회 2회 - 백조가 되는 꿈

나빌레라 1회 2회 - 백조가 되는 꿈 덕출은 70대 노인이다. 덕출의 꿈은, <백조의 호수> 공연에 서는 것이다. 오래 전 그는 사람이 날아오르는 순간을 본 적이 있다. 어린 날의 그는 새처럼 자유로운 그 움직임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었다. 그러나 그 꿈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날아오르는 것, 백조가 되는 것. 어린 날 꾸었던 빛나는 꿈은 그렇게 덕출의 삶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어른이 된 덕출은 집배원이 되었다.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 비록 어릴 적 꿈과 다소 다른 방향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우편물을 배달하는 일은 그것만의 가치가 있었다. 덕출은 그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그는 있는 힘껏 일하는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으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리고 일흔. 장성한 자녀들은 결혼을 했다. 그는 나이 들었고, 일에서 은퇴한지 오래다. 남들이 보기에는 한가롭고 안온한 걱정없는 노년이다. 하지만 덕출은 이런 생활 어딘가에서 쓸쓸함을 느낀다. 곁에 있는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잘 자란 자식들을 보는 보람으로도 메꿔지지 않는 공허가 있다. 뭘까. 이게 뭘까. 스스로에게 되묻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아니, 사실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 외면해온 건지도 모른다. 오래 전 잃어버린 꿈이 여전히 그의 안에서 빛나고 있다는 걸. 어릴 적의 꿈은 ...

2021.04.08
[드라마리뷰]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15회 16회 - 한 걸음 물러서자 선명해지는 + 마지막회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15회 16회 - 한 걸음 물러서자 선명해지는 현승은 언제나 ‘괜찮다’고만 했다. 담담한 얼굴로 미소짓는 현승 앞에서 송아는 자꾸만 작아지고, 또 미안해졌다. 혹시 내가 나의 이기심으로 너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럽지사의 일 때문에 현승과의 약속이 번번이 뒤로 밀릴 때마다, 애써 실망을 감추며 격려해주는 현승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송아는 조금씩 조금씩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너를 위해서, 이제 그만 너를 놓아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그 때, 그녀가 현승의 손을 놓은 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사랑해서였다. 정말 사랑한다면 많이 아프고 괴롭더라도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게 송아가 현승을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현승도 그런 송아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괴로운 얼굴로 그녀가 자신을 밀어내던 그 순간, 그녀를 이해하는 마음보다 두려움이 더 앞섰다. 모질게 자신을 잘라내는 송아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면서도 쉽게 버림받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 현승의 삶에서 송아는 전부였다. 자기 삶에서 송아를 비우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도 없었다. 송아와 헤어진 1년은 현승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속이 텅 비어버린, 이 세상에 홀로 뚝 떨어진 것만 같던 어둡고 외로운 시간. 그렇기에 다시 돌아온 송아를 현승은 쉽사리 ...

2021.03.10
[드라마리뷰]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13회 14회 -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 15회 예고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13회 14회 - 같은 곳을 바라본다면 송아는 유럽 TF팀에 합류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에 휩싸인다. 일에 대한 송아의 애정은 남다르다. 그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충분히 만족하며, 본인이 다는 회사와 브랜드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도 있다. 하지만 같은 회사에서 일을 계속 해 나갈수록, 이 앞에는 뭐가 있을까,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송아에게 유럽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이번 기회는 말 그대로 언제 올지 모르는 천운같은 것이었다. 이전에는 재신이 유럽 TF팀을 이끌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털어냈지만, 재신도 회사를 떠나고 송아의 능력을 믿어주는 선배가 TF팀을 맡게 된 지금, 송아는 자기 앞에 놓인 천금같은 기회에 자꾸만 흔들린다. 현승은 송아의 마음을 알고 있다. 송아에게 일이 어떤 의미인지도. 하지만 송아가 내심 유럽으로 가고 싶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현승은 할 수만 있다면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지금 송아를 유럽으로 보내고 불안해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아는 생각을 곱씹을 수록 스스로가 유럽에 가고싶어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현승과의 관계가 소중하지 않아서, 그를 덜 사랑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오래도록 남을 후회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현승은 조금 힘들지만 송아의 결정을 받아들인...

2021.03.03
[드라마리뷰]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11회 12회 -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 13회 예고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11회 12회 - 내가 네 편이 되어줄게 우리는 같은 편이다. 여러 사건 사고를 거치는 동안 현승과 송아는 서로에게 그런 확신을 갖게 된다. 애써 개발한 제품을 다른 팀의 농간으로 뺏기는 기분이 들었을 때에도, 과거의 일이 뜻밖에 새어나가 회사 내에 지저분한 소문으로 번져나갈 때에도, 그들은 서로의 곁에서 든든한 지지가 되어준다. 나는 당신이 잘 해나갈 것을 믿고, 나는 당신이 무너지지 않을 것을 믿는다고. 그리고 그 옆에는 반드시 내가 함께 있겠다고. 드라마는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현승의 누나인 연승 부부의 일, 재신과 효주의 에피소드를 통해 ‘사랑’이란 감정이 우리에게 건네는 신뢰와 지지에 대해 말한다. 뜨겁지는 않지만 자상한 남편 우현과 안온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연승은, 뜻밖에 우현의 과거를 알게 되고 혼란에 빠진다. 다른 것보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 나를 기만했다는 사실이 연승을 혼란스럽게 한다. 당장 그에게 뭐라 따져묻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들은 척 넋 나간 얼굴로 돌아서는 연승의 얼굴은, 이후 이들 부부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하게 했다. 한편 효주는 결혼을 앞두고도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재신으로 인해 엄청난 감정의 기복을 보였다. 재신에 대한 효주의 감정은 사랑보다도 집착에 가깝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부부로서 한 가족으로 재신을 지지하고 힘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2021.02.24
[드라마리뷰]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10회 - 다 거는 거, 그거 내가 하면 되니까 + 11회 예고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10회 - 다 거는 거, 그거 내가 하면 되니까 송아도 처음부터 엄마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말까지는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아픈 사람이니까 조용히 곁을 지켜야지. 몇 번이고 다짐을 하지만 정작 엄마와 몇 마디를 나누는 동안 대화는 서로를 상처 입히는 방향으로 변질되어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 해서 과거의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청소년기의 상처는 송아의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모든 결핍과 상처에 대한 대가를 송아가 치르길 원했고. 그것은 송아에게 그 때도 지금도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다. 언제나 돈만 바라던 아버지를 잃은 재신의 기분을 송아가 별 노력없이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재신이 아버지에게 느꼈을 모순된 감정을 송아 역시 엄마에게 느끼고 있으니까. 짐같고, 떼어내고 싶고, 밀치고 싶으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차마 놓아버릴 수 없어서 스스로 더 괴로워지고 마는 마음. 재신에겐 돈에 미친 아버지가 그랬고, 송아에겐 죽은 아버지를 놓지 못하는 엄마가 그랬다. 아픈 엄마에게 보호자는 송아 뿐이다. 몸이 아픈 엄마를 간호하는 것은 차라리 버겁지 않다.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함께 있는 동안 엄마가 뱉는 말들, 원망들, 이제와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태도들이다. 남편을 잃고 하나뿐인 딸에게...

2021.02.17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

아직은 잘 모르겠고 내일 회차까지 지켜봐야지

2021.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