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호텔 이라 쓰고 북여인숙이라고 부른다 가끔 고전을 읽을 때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소설은 영화나 드라마 또는 뮤지컬의 뼈대가 된다면 볼거리가 참 풍부하겠다 싶은 생각. 북호텔을 읽으면서 내내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여러 번 등장하는 운하도 그렇고 제마프 둑길도 실제로 보면 어떤 풍경일지. 장면마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개성도 만만치 않아서 참 재미있는 드라마가 완성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상상력을 자극하는 책이다. 1920년대의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살았을까. 우리가 아는 화려한 프랑스가 아니라 프랑스의 뒷골목 서민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와 닮았을까. 대개 이런 생각은 나보다 먼저 책을 읽은 독자가 선수를 치기 마련이다. 프랑스 영화의 명장이라고 불리는 마르셀 까르네 감독이 이미 이 소설을 영화화한 모양이다. 물론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각색한 것 같았다. 이 소설처럼 한 장소를 배경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담담하게 나열하고 세세하게 묘사하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지만 이 정도로 담담한 문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소설이라는 게 기승전결이 있거나 독자의 재미를 위해서라도 클라이맥스 부분은 만들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도무지 특별한 일이 없다. 굳이 놀라운 장면을 찾는다면 르네의 아기가 죽었다는 전보가 왔을 때다. 하지만 그것도 예민한 독자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정도였다.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의 별스럽지 않...
연대성을 부정하는 것은 헛된 짓이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생지 우한에 살고 있던 교민들을 수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격렬한 시위를 봤다. 반대하는 주민의 숫자는 다행히 많지 않았지만 교민을 태운 버스의 진입을 막겠다며 물병을 집어던지고 거세게 반발했다. 그런 주민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타국에서 본의 아니게 전염병에 노출되고 오갈 데가 없어진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를 짐작하니까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내 나라로 돌아가서 적절한 치료를 받고 지친 마음도 쉬고 싶은데 정작 받아주는 곳이 없다면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라는 말인가.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전염병으로 인해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격리자들은 고통스러운 질식 상태를 경험한다. 백신이 없는 두려운 질병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도시는 폐쇄되고 그 도시 속에 갇혀버린 시민들은 생각지도 않았던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책은 시종일관 전염병에 노출된 사람들의 절망과 체념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카뮈는 페스트라는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페스트가 아닌 수인들이라는 제목을 붙일 계획이었다고 전해진다. 그 사실만으로도 카뮈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불가항력의 상황 속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도덕적 딜레마를 말함과 동시에 그러한 해석을 삶의 전체로 확대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