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잘 교육된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보통,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을 보며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경험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데요. 사실은 이에 대한 반응 속에 보다 깊고 넓은 차원에서의 경험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표면적인 경험과 의식 차원에서의 본질적인 경험. 이 둘을 함께 바라본다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진짜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요. 잘 교육된 그리고 열심히 인간의 심리와 마음을 공부하신 분들에게 전합니다. https://youtu.be/9hpVH9nZDrk 고맙습니다 🙏 애씀 없이 이루는 삶 플로우라이프
많은 분들이 혼란을 겪는 마음/심리 공부 메시지 하나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인간의 의식, 마음, 심리와 관련된 책이나 영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죠. "감정을 흘려보내라." 맞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잘 알아차린 뒤 흘려보내줬을 때, 우리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표현은 간단하죠. "감정 흘려보내기." 단 일곱 글자예요. 감정을 흘려보내라고 강조하고 조언을 주는 분들이 각자 실제로 어떤 배경과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담아 이 표현을 사용하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입문자들 중 꽤 많은 분들이 "감정을 흘려보내세요."란 표현에 오히려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 말이죠. © helloimnik, 출처 Unsplash 이 표현을 본 사람들의 생각은 보통 이렇습니다. 처음엔 감정은 흘려보내란 말에 위안을 얻습니다. 보통 이런 말 앞뒤로 감정은 '나'가 아니고, 감정은 일시적이며, 모든 감정에는 역할이 있고, 저항하는 것은 오히려 고통을 지속시키기에, 잘 알아차리고 수용함으로써, 그 감정을 흘려보냈을 때 마음이 평온해진다는 등의 내용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이런 글을 읽는 상황에서 '아, 내가 너무 감정에 휘둘릴 필요가 없겠구나' 라는 마음가짐과 함께 공감과 위안을 얻곤 하죠. 하지만 그렇게 가만히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거나 영상을 보고 있을 때와 달리,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사건과 마주하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수용하는 법에 대해. 전 제가 온전히 수용 받는다는 느낌을 받은 대화 경험이 적습니다. 분명 그런 경험이 있긴 있었겠죠? 설마 살면서 한 번도 없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습니다. 기억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아요. 반면 수용 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은 적은 많습니다. 특히 용기를 내서 내 속마음이나 고민을 털어놓을 때 말이죠. 그럴 때 상대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그게 뭐 고민이라고',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내가 보니 별거 아닌데?', '너보다 심한 사람도 있어', '그렇게 약해서 어떻게 살아갈래', '네가 잘못 판단한 거 같은데?', '00를 봐, 더 극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극복해냈어'... 제 감정을 부정하고,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제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며,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충고를 내렸죠. 그 사람들이 결코 무정하거나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저와 가장 가깝고 유대감이 깊은 사람들이었죠. 그럼에도 온전한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매번 어딘가 모르게 찜찜함과 아쉬움이 남았죠. 그럴수록 저는 점점 입을 다물었습니다. 해봤자 안 된다는 무력감과, 괜히 또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불안감 때문에 말이죠. 그 사람들이 전부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삶의 경험이 풍부하고 인간의 감정과 심리, 의식에 대해 저...
며칠 간의 관찰 결과를 말씀드릴게요. 개인적으로 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사실 관찰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죠. 다만 제 경우 좀 더 호기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각종 공부를 하는 큰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 도대체 뭔지 알고 싶어서죠. 아무튼 최근 며칠간,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하루는 정점을 찍기도 했고요. 이번 감정들은 분노, 짜증, 무기력, 좌절감 등이 아주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덩치가 좀 있는 아이였습니다. 이럼 감정은 감정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와 연계된 생각들을 불러오죠. 온갖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생각들이 연쇄적으로 올라오고, 그런 생각은 다시 또 이와 유사한 감정을 증폭시킵니다. 순환 구조를 이루죠. 빛으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죠? 이럴 때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 부정을 확 뒤덮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감정들은 그런 이성적이고 긍정적인 대처로 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특정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땐 이와 반대되는 또 다른 감정이 쉽게 자리를 비집고 들어올 수 없거든요. 잔뜩 화가 난 사람에게 웃으라고 말한들 쉽게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오히려 화만 돋우죠. 그래서 전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했습니다. 일단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온갖 신호들을 끊었어요. 노트북도 끄고 스마트폰도 멀리 놔...
모든 대화와 메시지엔 맥락이 중요합니다. 아래 글부터 먼저 읽으시길 바랍니다. 끌어당김에 한계를 느끼고 마음공부에 진전이 없다고 여겨지는 일부 입문자를 대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본 포스팅은 아래 글에 이어서 작성한 글이고요. https://blog.naver.com/speralist/222377649244 끌어당김도 안되고 마음공부에 진전이 없을 때 추천하는 건 마음공부 입문자에게서 많이 보이는 패턴입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대중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릴게요. 처음... blog.naver.com 이 단계에 종종 발생하는 패턴입니다. 그동안 배운 바가 있으니 감사 일기도 쓰고, 긍정적인 말을 외치는 확언도 하고, 눈을 감고 원하는 삶의 모습을 시각화합니다. 이들은 모두 분명히 좋은 도구입니다. 다만, 이미 몇 차례 말씀드렸듯이 "도구"에 앞서 먼저 봐야 하는 건 그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입니다. 남들이 효과를 본 좋은 도구가 있더라도, 지금의 내 상태와 맞지 않거나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오히려 부작용만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분명 다들 효과가 있다고 하니 감사 일기를 쓰고 있지만, 지금의 내 마음 상태는 도저히 감사할 상황이 아닙니다. 온갖 부정적 감정들이 올라오는 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고 뭘 해야 할지 모르기에 혼란스럽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좋은 말들을 들어왔지만 감정적으로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해야 ...
마음공부 입문자에게서 많이 보이는 패턴입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대중적인 관점에서 말씀드릴게요. 처음 시작은 일반 자기계발, 재테크, 비즈니스 시장과 혼재돼 있어요. 긍정 마인드, 부자의 사고, 목표 (건강,돈,연애...) 성취 등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다 조금씩 잠재의식이란 영역을 접하게 돼요. 이와 동시에 시크릿, R=VD, 끌어당김의 법칙, 운 등을 알게 됩니다. 어쨌든, 본격적으로 비전보드를 만들고 긍정 확언을 하고 시각화도 해요. 주어진 현실에 답답하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꿈을 성취할 수 있다는 이런 개념들은 엄청난 희망일 수밖에 없어요. 감정적으로 고양된 상태에서 더 나은 미래를 그리게 됩니다. 전에 없던 밝고 즐겁고 기쁜 상태를 겪기도 해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부딪힙니다. 처음엔 좋았는데, 어느새 '나는 왜 안되지?'란 의문이 들어요. 대단한 목표를 달성했다는 사례들과 달리, 내 삶에는 생각만큼의 큰 변화가 없거든요. 높이 올라갔던 롤러코스터가 빠르게 하강하듯, 기분 역시 다운됩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요. 이제 와서 돌아보니 다들 근거도 빈약하고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같습니다. 어딘가 찜찜함이 남아 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새로운 돌파구를 만납니다. 정화, 치유, 힐링 등으로 부르는 작업이에요. 끌어당김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내 안에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많았기 때문...
© jasonhogan, 출처 Unsplash 1. "믿음"의 힘은 강합니다. 중요하죠. 하지만 불안정합니다. 믿음은 의심을 동반합니다. 어둠이 있기에 빛이 도드라지죠. 믿음이 강조되는 건 그만큼 믿지 못하는 마음, 즉 "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의심을 없앨 수 있느냐? 아닙니다. 올라오는 감정을 일시적으로 억제, 억압, 회피할 순 있어도 존재 자체를 없앨 수는 없는 것처럼, 의심 역시 그렇습니다. 의심을 강력한 힘으로 잠시 눌러놓을 수는 있습니다. 그게 "확신"이고 잘못 지나치면 "맹신"이죠. 하지만 언젠가 그 의심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존재 자체가 없는 게 아니니까요. 마음공부나 자기계발, 의식 성장, 영성, 혹은 종교 등의 시작이 믿음일 수 있습니다. (이하 '마음공부'로 통일) 지금의 현실로 본다면 거의 대부분이 그렇겠죠. 하지만 믿음이 완성일 수는 없습니다. 또 다른 성격의 것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패러다임이 바뀌어야죠. 그게 "앎"입니다. 알면 굳이 믿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거든요. 앎은 개념과 체험으로 구성됩니다. 여기서도 <논어> 속 구절이나, 칸트의 말이 적용됩니다. <논어>엔 "배우기는 하지만 사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고, 생각만 하고 배움이 없으면 위태롭다"라는 구절이 있죠. 칸트는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를 조금 응용하자면, "체험이 없는 개념은 공...
유명한 일화죠. 각종 강연이나 책에서 소개되곤 합니다. 조금씩 각색되곤 합니다만, 대충 골자는 이렇습니다. 파리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 피카소에게, 어떤 사람이 요청합니다. 비용을 지불할 테니 그림 하나를 그려달라고 말이죠. 그 말을 들은 피카소는 냅킨 하나를 꺼내 스케치를 한 뒤, 우리 돈으로 수 천만 원의 비용을 요구했습니다. 놀란 상대는 말합니다. "아니, 30초밖에 안 걸렸잖아요?" 그러자 피카소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이 그림을 그릴 수 있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여러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일화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일화에서 가장 크게 얻는 교훈은 "누적"입니다. 짧은 시간 그린 그림에 수 천만 원을 이야기할 수 있기까지, 우리가 아는 피카소가 되기까지, 그가 공들여 쌓아온 연습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냥 피카소가 된 게 아니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런 피카소가 되기까지의 과정보다는, 인정받고 유명세를 떨치는 결과만 바라보곤 합니다. 이런 현상은 흔히 '마음공부'라 부르는 내적 수행의 과정에서도 나타납니다. 기존의 강박적 노력이나 자기계발, 사회문화의 한계를 느끼고 마음공부라 부르는 작업을 시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명상을 하고, '영성'이라 부르는 분야의 책을 읽고, 끌어당김 주문을 외우고, 정화 작업을 하고, 심리학을 공부하고, 동서양의 수행법을 실천하고... 각자의 여정에 따라 그 방법은 다르지만 어쨌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