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청포도> 청포도를 먹는다는 것은 곧 하늘의 공간과 전설의 시간을 먹는 것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제1의 자연 삼각형, 제2의 우주 삼각형, 그리고 제3의 인간(사회, 역사)의 그 삼각형이 오버랩될 때 그의 시적 행위는 종결된다. 그것이 육사가 '우리의 식탁'이라고 부르고 있는, 바로 모든 것이 일체화하는 그 종결의 장소이다. <황혼>에 있어서의 골방처럼 은쟁반의 작고 둥근, 그러나 눈부신 빛의 금속 위에 육사는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모든 것을 하나로 담았다. 아니다. 마지막 시행들이 '…좋으련만','…마련해 두렴'의 원망 종지형으로 끝나 있듯이 모든 것을 하나로 담으려 하고 있다. 그에게 시란, 그리고 삶과 인간의 역사란 청포도를 함께 먹기 위해 마련하는 '우리의 식탁', 그리고 그것이 한층 더 응축된 은쟁반을 예비해 두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러한 몽상의 끝에 있는 것은 언제나 진솔하고 정갈한 다공질의 섬유, 그 모시 수건이 아니겠는가. 이어령의 <다시 읽는 한국시> 중에서 이육사의 <청포도>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기 때문이다. '육사'라는 이름도 형무소 수인 번호에서 따온 것을 보면 여러 번 수감이 되었어도 나와서 또 그렇게 육사 방식의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장렬하다. 개인적으로 '광야'가 가장 웅장한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