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 감독 김성제 출연 송중기, 이희준, 권해효, 박지환, 조현철, 김종수 개봉 2024.12.31. 하필 콜롬비아의 보고타인가? 하는 의문은 있습니다. 왜 수리남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 이상할 건 아니요. 대신 송중기 배우의 행보에도 의문은 있지만 일관성은 있습니다. <화란>과 <로기완>과 <보고타>로 이어지는 출연 작품은 만족도를 떠나 결이 비슷한 지점이 있으니까요. IMF로 인해 보고타로 떠난 가족들이 잠시 머물렀다 미국을 향하지 못한 채 눌러 앉아 버린 사람들이다 보니 이건 아메리칸드림 근처에 머물러 버린 남아메리칸 드림이 되었네요. 독특하게 70~80년대 아니라 IMF를 관통해 2000년대를 무대로 벌어지는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전투구입니다. 관람 전 우려가 있었지만 생각보다 멀쩡하고 몰입해서 봤습니다. 다만 <보고타>의 안타까운 운명은 <나르코스> 같은 작품을 거론하지 않아도 <수리남> 같은 작품이 먼저 공개되어 버린 후라 비교 당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그렇게 극적이진 못하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른 비교 작품과는 달리 거의 누아르에 가깝게 그려져 있습니다. 기존 우두머리와 신흥 강자 그리고 현지 우두머리와 새로 들어온 새싹의 서사로 그려져 있는데 구도만 봐도 그리 새로울 게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대충 인물들의 성격과 위치만 봐도 전개 방향이 다소 예상이 된다는 점도 그렇고 의류 밀수를 행하...
하얼빈 감독 우민호 출연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릴리 프랭키, 이동욱 개봉 2024.12.24. <영웅>이 보여준 인간 안중근의 면모와 뮤지컬 장르로서의 매력은 따로 있었으니 <하얼빈>은 순수하게 첩보 스파이 영화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사실 하얼빈의 저격 사건 이전에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과거는 대체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이라 <하얼빈>은 상당 부분 예상과 상상력으로 채우고 고증을 따라 역사와 맞닿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흔적이 돋보이네요. 본격적으로 총성이 울리는 영화가 아니고 거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신경전과 심경 변화 등이 담긴,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독립군으로서의 고심과 갈등을 그려낸 드라마에 가깝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암살>이 보여줬던 상업적인 매력과 역사적인 부분의 결합이 좋은 결과물로 나온 사례인데 이 작품은 사실 <밀정>의 그것과 닮아 있습니다. <밀정>이 의심과 확신 사이의 긴장감이 꽤나 컸는데 그 과정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갈등과 심리 드라마가 강한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하얼빈> 역시 안중근의 인류애적인 신념과 독립에의 욕망 사이에서 주위의 질타와 시기 그리고 믿음을 받으면서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로 그려져 있어서 인간 안중근 이상의 사회인과 국민 안중근의 면모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조금 건조하고 철학적인 측면도 있고요. 전투 장면이 없는 건 아...
내년 한국 영화 개봉 예상 작품들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영화 개봉 유무와 상영 플랫폼의 변경 여부는 외화보다 훨씬 유동적인 관계로 참조만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개봉 시기만 미정일 뿐, 개봉 자체는 확실한 작품을 우선적으로 배열하고 해를 넘기거나 변동 가능성 있는 작품 및 배급사 미정의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후반부에 배치하였습니다. 당연히 포스터의 경우 공식 이미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일부 연초 개봉 영화를 제외하면 개봉일 언급은 가급적 하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정보나 오류는 적극 제보 부탁드립니다. 새해를 여는 첫 한국 영화는 <뽀로로극장판바닷속대모험>입니다. 오콘과 CGV가 꾸준히 협력 관계를 유지 중에 있으며 이번이 아홉 번째 극장판입니다. 최대 90만명을 넘겼던 시리즈는 이제 30~40만명 정도의 흥행력을 유지 중에 있습니다. 아이들의 대통령의 현재 위치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겠네요. 한국 영화 실사 영화로는 첫 개봉이 되는 <동화지만청불입니다>입니다. <협상>을 연출했던 이종석 감독의 차기작이며 <히든페이스>에 이어 배우 박지현이 주연을 맡았는데 이 작품 역시 제목과의 연관성 때문인지 청불이라고 하네요. 표현 수위가 높진 않겠지만 수위 높은 대사들이 즐비할 것으로 예상되니 이런 작품은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코믹할 테니 더욱 좋고요. 설 연휴 시장에서 격돌할 첫 한국 영화는 <히트맨2>입니다. 전작은 당시...
1승 감독 신연식 출연 송강호, 박정민, 박명훈, 장윤주, 이민지 개봉 2024.12.04. 이건 선수와 감독 그리고 구단주와의 전쟁인 건가? 종목이 다른 한국판 <메이저리그>가 될 거라 섣불리 예측했는데 일부는 맞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스타일의 얘기네요. 중위권 팀에서 에이스가 빠져나간 여자배구단이 매각설에 휘말리고 제벌 3세쯤 되는 인물이 덜컥 구단을 사서 1승을 하라고 제안을 합니다. 뭐 <메이저리그>와 거의 같은 설정이지만 당최 알 수 없는 속마음의 구단주는 이 영화의 핵심이 되어 버렸네요. 의욕이 거의 사라진 삼류 감독과 경기조차 뛰지 못했던 다수의 선수들이 그 1승을 향해 가는 전형적인 스포츠 영화의 전개를 따릅니다. 일단 배구하는 종목은 핸드볼만큼이나 귀한 시도라서 반가움이 있습니다. 스포츠 영화에 흔히 등장하지 않은 종목인 탓에 유명 선수 출신 감독과 카메오들이 즐비한 이 영화는 다른 스포츠 영화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보통 감독이 주연인 작품에서도 중심 선수가 있고 백그라운드와 더불어 서사를 부여하기 마련인데 개별 캐릭터에 성격은 주어졌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거의 최소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과거 이야기에서 끌어올린 승리의 기쁨은 신파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에 무척 심플하고 간결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감독인 송강호 배우는 몰라도 구단주부터 선수 하나까지 그냥 쿨함 그 자체네요. 배구라는 종목이 주는 박진감...
소방관 감독 곽경택 출연 주원, 곽도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오대환, 이준혁, 장영남 개봉 2024.12.04. 결말이 예정된 실사 소재의 영화인데다 특수 직업이라 할 수 있는 소방관의 삶을 다룬 <소방관>입니다. 독이 든 성배와 같은 소재를 영화화한다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인데 더 이상 새롭기 어려운 화마와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풀어내고 숭고한 희생을 그리는 터라 진지하고도 사실적인 측면을 부각하려는 노력도 뒤따라야 하는 무척 어려운 작업일 겁니다. 더구나 기술적인 부분과 안전이 직결된 부분인데다 시대적 고증까지 겹쳐져서 지금 영화 시장에선 섣불리 시도하기 꺼려지는 많은 부분을 떠안고 있는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소방관 스토리가 선뜻 내키지 않는 것은 감동적일 순 있지만 보통 누군가의 죽음이 동반된다는 점입니다. <분노의역류>나 <온리더브레이브> 같은 작품이 영화적인 것과 실화 바탕의 이야기 그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작품들인데 <소방관>은 <온리더브레이브>에 더 가깝습니다. 여러 캐릭터의 가정사와 과거 등이 그려지고 인물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등 소방관이란 직업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비추면서 꽤나 공익적인 기능에선 상당 부분 많은 점수를 획득합니다. 무겁지 않게 2001년 시절의 소방관에 대한 처우와 함께 정말 옛날처럼 느껴지는 국민들의 의식 또한 상기시키더군요. 제법 많은...
대가족 감독 양우석 출연 김윤석, 이승기, 김성령, 강한나, 박수영, 김시우, 윤채나, 심희섭, 길해연, 이순재 개봉 2024.12.11. <과속스캔들>이나 <수상한그녀>처럼 가족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들이 큰 성공을 거뒀던 시절이 15년 전부터였네요. <대가족>의 예고편만 보면 <과속스캔들>의 변형처럼 보였습니다. 거기에 조금 변형을 가한 이 영화는 주인공의 한 축을 출가한 아들이 되고 대를 잇기 위한 꼬장꼬장한 아버지로 설정하면서 코미디가 조금 더 녹여든 영화로 예상했는데 이 작품은 <수상한그녀>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네요. 드러난 설정보다 조금 더 확장하고 난장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영화로 한국 영화 가족 코미디의 최전성기 시절을 소환하며 떠올리게 하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조금은 어깨를 풀고 온 양우석 감독이 어쩌면 지금은 올드하고 뻔해 보이기도 하는 <대가족> 같은 작품을 선택한 건 의외로 보이기까지 하네요. 초반은 인물 간의 구도와 설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코미디의 색이 짙고 정말 <과속스캔들>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이 작품은 상황이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코미디 영화는 아니어서 오히려 후반부를 위한 빌드업이라 하겠네요. 영화의 코믹함은 주로 김윤석 배우가 맡아서 <완득이>나 <거북이달린다>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코믹 연기를 선사하니 뭔가 반가움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묘하게 즐거웠네요. 여...
히든페이스 감독 김대우 출연 송승헌, 조여정, 박지현, 박지영, 박성근 개봉 2024.11.20. 욕망과 계급이라는 이야기를 김대우 감독이 아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음란서생>이나 <방자전> 그리고 <인간중독>까지 계급은 여러 가지 갈등과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히든페이스> 역시 이런 계급과 욕망의 상관관계를 도덕적인 딜레마와 함께 스릴러로서 매끈하게 만든 작품이었네요. 2011년 콜롬비아 영화를 리메이크한 <히든페이스>는 리메이크의 사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여지가 많았던 작품이었고 꽤나 흥미로운 구석도 많았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꽤나 눈에 띄어서인지 미래에까지 꾸준히 회자되거나 기억될까 하는 의구심은 있네요. 영화는 거의 3명의 인물에다 한 명 정도 추가한, 4명의 인물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작품입니다. 결혼을 앞둔 부유한 첼리스트와 자수성가한 지휘자의 삶에 뛰어든 위험한 선택이 욕망을 비틀고 쥐어짜면서 도덕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해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네요. 영화 속에선 지켜보는 자가 역으로 사건을 장악한 자가 아니라 그저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묘사한 특이한 매력이 있는데 음과 양, 어둠과 빛의 양면성을 벽과 벽 사이의 인물로 대비시키며 두 상황 모두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도덕적인 우월 지위를 부여하는 느낌도 들었네요. 영화 초반은 다소 처지는 느낌이 강하고 시...
사흘 감독 현문섭 출연 박신양, 이민기, 이레 개봉 2024.11.14. <검은사제들>은 배경이 한국이란 것 외엔 온전히 서구식 오컬트 영화였고 <파묘>는 전후반을 나눠 한국과 서구식 스타일을 병합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흘>은 신부와 구마 의식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한국의 전통적인 장례의식이 합쳐지는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장례를 1일차, 2일차, 3일차로 나눠 보여주는 등 상당 부분 장례식장과 시체안치소에서 영화가 진행되기도 하고요. 예고편만 봤을 땐 묘하게 동서양의 감각이 잘 혼합된 오컬트 영화가 되겠다 싶었는데 확실히 섞이긴 했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결합되어 묘한 영화가 되어 버렸네요. 딸의 심장이식 수술을 맡은 흉부외과 전문의에게 다가온 딸의 죽음과 장례 절차에 따른 그의 심경 변화가 주된 이야기의 축을 이루고 있는데요. 다소 기괴한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무서운 부류의 호러 영화로 보긴 어렵습니다. 악마가 깃들며 숨져버린 딸을 보내지 못하는 아버지와 완전히 악마를 제거하려는 구마 사제 사이의 갈등과 그들의 과거들이 꾸준히 소환되는 방식의 전개인데 이게 너무 잦고 또 극의 전개를 해치는 결과는 보입니다. 딸과의 여러 차례 대화는 수시로 플래시백 형태로 등장하는데 때론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들이 등장하고 감정선을 망가뜨리더군요. 이성의 끈을 가지고 있으나 과거로 인해 고통받는 구마 사제 캐릭터는 카리스마나 당위성 같은 게...
아마존 활명수 감독 김창주 출연 류승룡, 진선규, 이고르 페드로소, 루안 브룸, J.B. 올리베이라, 염혜란, 고경표 개봉 2024.10.30. 개인적으론 <아마존활명수>에 대한 기대가 큰 편이었는데요. 본격 코미디 영화도 드문 편이고 콘셉트도 확실한 작품이라 비록 말장난처럼 시작된 프로젝트처럼 보이긴 해도 뭔가 되겠다 싶었네요. 배우들도 코미디 방면에선 든든하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영화가 떠오르는 이 작품은 <부시맨>으로 시작해서 <비지터>와 더불어 <반칙왕>과 <국가대표> 같은 작품까지 두루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느 하나 제대로 성취해 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네요. 영화의 첫 장면을 보고선 이 영화의 코미디 톤을 알아버리고 말았으니 그 우려는 영화 끝까지 이어집니다. <부시맨>과 확실히 다른 점은 아마존 정글에서 온 세 명의 부족민이 웃음의 포인트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자연스레 유발하는 웃음이 아니라 그들을 보고 돌보면서 겪게 되는 한국 전 양궁 선수이자 만년 과장인 현 직장인의 리액션으로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에 웃음의 주체와 객체가 사뭇 다르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웃음을 유발해야 할 아마존 양궁선수를 보면서 관객들이 웃게 되면 그에 따른 리액션을 보이는 류승룡, 진선규 배우의 연기에도 공감되고 감정이입하면서 리액션 연기가 더 폭발적으로 웃음이 커지게 되는데 관객과 주인공의 리액션의 괴리감이 코믹...
청설 감독 조선호 출연 홍경, 노윤서, 김민주 개봉 2024.11.06. 아우라가 큰 작품은 리메이크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죠. 대만 영화 <청설>은 <말할수없는비밀>의 광풍에 이은 작품이었는데 극장에선 냉대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였고 이후 입소문이 난 케이스의 작품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제목이 푸른 눈인 줄 알았어요. 10년도 훌쩍 지난 작품이라 본편이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이번 국내 리메이크 작품은 새로운 마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자매의 언니 동생 역할이 바뀌고 부모님들의 주변 상황들이 변경된 수준이었고 대부분은 원작에 충실한 리메이크라 할 수 있었는데 요게 국내 정서에 잘 담기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더군요. 일단 26세 동갑내기 주인공이란 점은 사회생활 입문이 필요하며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작품임을 감안하면 영화 속에 두 사람의 로맨스 외에 추가로 담긴 것들이 제법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하겠습니다. 장애인 차별 소재를 무겁지 않게 잘 그렸고 꿈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여러 캐릭터들을 통해 개별적으로 그린 점 등 원작보다 우수한 점도 있었습니다. 원작을 모르시는 분이라면 온전히 로맨스에 치중하지 않아서 전반부와 후반부의 이야기가 분위기도 완전히 다르니 당황하실 수도 있겠지만 달달함 뒤의 쌉쌀함도 함께 건네는 작품이라 좋았습니다. 당연히 수어를 통한 자막이 주를 이루니 영화의 여백을 상당 부분 음악이 채우고 있습...
폭설 감독 윤수익 출연 한해인, 한소희 개봉 2024.10.23. 어쩌면 너무 늦게 도착한 영화가 아닌가 싶은 <폭설>은 마치 대세가 되어버린 한국 독립 영화의 퀴어 바람에 뒤늦게 뛰어든 작품처럼 보입니다. 제작과 개봉이 늦어진 사이 톱스타가 되어버린 한소희 배우의 입지까지 생각하면 개봉 지연으로 인한 득과 실이 나뉘는 작품이 되기도 했네요. 두 여고생의 이야기로 시작된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작품으로 독특한 것은 연기자를 꿈꾸는 여고생과 이미 스타의 반열에 오른 여고생의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배경은 강릉이면서 바다가 주요 모티브를 제공하는 영화로 완성되었네요. 조금은 세련된 <윤희에게> 같은 작품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 작품에도 묘한 기대와 같은 것이 있었는데 가급적 예고편은 거른 채 만났습니다. 강릉의 한 예고에서 전학생으로 만나 아웃사이더인 두 사람의 초보 연기자와 스타 배우와의 삶이 대비되면서 두 사람은 각각 지향점이 다르고 이미 이룬 자와 이루고 싶은 자의 이야기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관계를 다룹니다. 다소 전형적이지만 뻔하지 않게 다루고 있으며 과거를 빠르게 스케치하고 현재를 비추면서 두 사람의 위치 변화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입장 변화를 따라가고 있네요. 일반적인 전개의 라이트 한 퀴어 영화지만 두 사람의 입장에 따른 감정 변화가 섬세한 편이라 이야기를 따라가고 공감하는데 크게 어렵진 않았...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감독 김민수 출연 정우, 김대명, 박병은, 조현철, 정해균, 유태오, 백수장, 임화영 개봉 2024.10.17. 생각보다 가볍고 소소하게 시작하는 오프닝을 보고 있자면 조금은 진지한 버전의 <투캅스>인가 싶었고 돈을 두고 벌이는 코믹 범죄극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 비리 경철이나 마찬가지인 두 사람이 어떤 사건에 휘말릴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가운데 영화의 특장점이 무엇일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받아야 하는 딸을 가진 형사와 도박빚이 있는 후배 형사라는 설정은 썩 끌리지 않는 한수처럼 보였네요. 더구나 초반 인간적인 면모를 선보이는 탓에 배우들의 전작 캐릭터와 오버랩 되는 순간도 살짝 있었고요. 실질적으로 상황이 꼬여만 가는 스타일의 범죄 소동극이 될 거란 예상도 빗나가서 이 영화는 진득한 누아르였습니다. 분명 갈수록 태산이란 말이 어울리는 전개에 쉽게 봤던 일이 점점 커지기도 하면서 두 형사를 압박해 오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게 그려져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는 스타일은 또 아니라서 시동을 걸었다가 다시 꺼지는 걸 반복하는 등 좀처럼 긴장감의 불꽃이 타오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캐릭터의 과거를 설명하는 과정이 수시로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면서 전개를 가로막는 인상을 크게 줍니다. 반면에 영화는 이렇게나 진지하고 무겁게 끝까지 갈 건가 싶을 정도로 ...
우리는 천국에 갈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겠지 감독 한제이 출연 박수연, 이유미, 신기환, 김현목 개봉 2024.10.16. 마치 일본 영화 제목 같은 <우리는천국에갈순없지만사랑은할수있겠지>는 두 개인의 이야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사회성 짙은 이야기에 두 사람 간의 관계에 집중한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한국 독립 영화들에겐 어떤 스타일 같은 게 있다는 걸 종종 느끼곤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문제를 녹여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존재한다는 게 보입니다. 그게 상당한 파급력을 지니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다른 작품들과 비슷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제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때도 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독립 영화보단 일반 상업 영화처럼 거의 군더더기 없었던 작품이었는데 아쉬움도 남네요. 영화의 분위기가 시시각각 변하는 편이라 조금 가슴 졸이며 보는 구간이 있습니다. 서로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과 마치 힐링 드라마 같은 가슴 따뜻해지는 여행의 장면들을 지나면 어두운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99년이란 시간적 배경은 레트로의 매력을 장착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단 반대로 아직은 많은 것이 성숙하지 못한 사회로의 회귀를 뜻하고 여러 가지 사회 문제와 인식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건 비슷한 가해자의 인식 외에 피해자의 인식 역시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는 점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삐삐를 써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가슴 아픈 반면, 답답한...
청설 감독 조선호 출연 홍경, 노윤서, 김민주 개봉 2024.11.06. 갑작스러운 대만 로맨스 영화의 리메이크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게 갑자기 불었다기보단 개봉 준비하는 영화의 면면을 보니 일본도 아닌 대만의 로맨스 영화들이로군요. 국내엔 그저 홍콩 영화와 중국 영화 사이에서 구분이 되지 않는 작품들이 많았던 대만 영화는 비록 산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말할수없는비밀>이 은근 입소문이 나면서 사랑받은 거의 첫 대만 영화나 다름없었습니다. 아후 <청설>이 뒤를 이었고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소녀>는 대만 현지에서 흥행 기록을 세우면서 국내에서도 개봉, 소소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극장 개봉 수익 외에 관객 입소문이 뜨거웠던 점이 세 작품 모두 비슷합니다. 이후 재개봉도 이뤄졌고요. 다만 현재는 대만의 본격 로맨스는 줄고 로맨틱 코미디 같은 작품들이 극장에서의 성공과 함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의소녀시대>, <장난스런키스> 등의 왕대륙 표 작품들이었는데 앞서 로맨스와는 결이 살짝 달랐습니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 그 세 편의 대만 로맨스 조상 같은 영화들이 줄줄이 리메이크 되어 개봉을 준비 중입니다. 먼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예고편도 공개한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소녀>입니다. 아이돌 출신인 트와이스 다현 배우와 B1A4의 진영 배우가 주인공을 맡은 작품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크랭크인 했고 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만큼 ...
보통의 가족 감독 허진호 출연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개봉 2024.10.09. 처음 <보통의가족>을 접했을 땐 두 부부가 식사하면서 은근슬쩍 드러난 비밀들이 파국을 향하는 그런 부류의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장소 변화가 없으며 과거 플래시백을 통해 뜻하지 않은 비밀들이 드러나고 그것이 곧 자녀들의 치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원작 소설도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리메이크에 포함되긴 하겠지만 한국식으로 변경하는데 큰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원작을 안 봐도 한국의 축소판이 곧 가족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흔들리듯 나풀거리는 가족이란 공든 탑의 이면을 제대로 드러냅니다. 기본적으로 가족의 설정이 무척 마음에 들었네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말이 된다고 느끼는 부분이 결국 가족 구성원의 관계와 직업, 나이까지 잘 계산된 세팅 같습니다. 변호사와 의사, 재혼한 새엄마와 그녀의 늦둥이 그리고 연상녀와 결혼한 동생과 젊은 재혼 상대를 만난 형까지 다양한데 여기에 자식을 아들과 딸을 각각 배치한 것도 세심했습니다. 원작의 요소를 어느 정도까지 가져온 것인지는 몰라도 원작이 놀랍거나 각색 자체를 놀랍게 한국적으로 아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엔 <니부모얼굴이보고싶다>와 비슷할까, 설경구 배우의 그림자도 엿보여서 살짝 걱정했습니다만, 그 작품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긴장감...
대도시의 사랑법 감독 이언희 출연 김고은, 노상현 개봉 2024.10.01. 장편 소설 전체가 아닌 일부 중단편 중 하나를 영화화한 <대도시의사랑법>입니다. 그런 정보가 없었던 저로선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이 들긴 했는데 영화의 제목과 드러난 주제나 이야기가 착 붙지 않는다는 인상이었어요. 여성 주인공의 이름인 "재희"가 제목이었던 단편을 장편 영화로 내놓았는데 사실 별다른 정보나 예고편도 보지 않고 본 저로선 적잖아 당황하기도 했네요. 일단 로맨스 장르로 묶을 수 있지만 로맨틱 코미디는 전혀 아니며 생각보다 재밌긴 했지만 묘한 이질감을 느끼면서 관람하는 저를 발견하기도 했네요. 상당 부분 나이 탓도 있겠어요. 성인이 되기 전부터 남과 다르다는 편견과 싸워야 하는 왕따 출신 별종 여성과 게이임을 숨기고 하는 남자의 수상한 동거를 다룬 이 작품은 흔히 말하는 다수가 소수를 다르게 바라본다는 점을 현실에 녹여 이야기합니다. 상황들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이를 잇고 묘사하고 스케치하는 모습은 무척 영화적이라 다소 당황스러웠네요. 영화의 톤은 상당 부분 로맨틱 코미디의 정서를 고스란히 따르면서 영화를 판타지로 기대하는 관객들의 목마름을 채우려 노력하지만 반대로 현실을 그리는 것은 그 깊이와 진지함이 살짝 아쉬움을 남게 만듭니다. 모쪼록 두 캐릭터를 머릿속으론 이해하지만 반대로 이해하기 힘든 구석도 있었으니 이건 다양한 인식의 차이와 더불어 성별...
베테랑2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정해인, 장윤주, 진경, 정만식, 신승환, 오달수, 오대환, 김시후, 안보현 개봉 2024.09.13. 9년 만에 공개되는 <베테랑>의 속편은 광수대에서 강력 범죄 수사대로 팀이 바뀐 것만 봐도 조금은 영화의 지향점을 알 수 있습니다. 대기업의 갑질이 수사 대상이었다면 이번엔 국민의 공분을 산 범죄자들을 향한 자경단과의 대결을 그린 작품입니다. 사실 영화적 규모를 본다면 훨씬 작아진 느낌이 들고 막강한 권력이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범죄라는 차이는 영화의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더 작아진 느낌이지만 깊어졌고 다크해졌으며 경제 권력의 수하들과 싸우던 일이 이젠 정말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네요. 일단 이 작품의 장점을 꼽자면 시의성입니다. 많은 범죄와 그에 연루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려운 현실에 개탄하면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우리 국민의 정서에도 예민한 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똑같이 돌려주는 개인적인 인물이 등장함과 동시에 온라인이 뜨거워집니다. 영화의 얼개 자체가 그리 새로울 것도 없고 초반의 뭔가 들뜬 분위기는 전편과 동일하게 노린 것 같지만 조금 유치하게 느껴져서 상당히 실망스러웠습니다. 류승완 감독님이 그럴 분이 아닌데 의도한 바겠지만 그럼에도 영화 전체를 보면 유독 튀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사실 빌런의 존재가 중요한 시리즈가 아니라 존재감 ...
한국이 싫어서 감독 장건재 출연 고아성, 주종혁, 김우겸, 김뜻돌, 이현송 개봉 2024.08.28. 원작을 읽지 않고 본 <한국이싫어서>는 제목이 주는 강렬함 때문에 원작과 별개로 호기심을 갖는 분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저 역시 그런 부류의 관객이었습니다. 직장과 가족 그리고 남자친구까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한국이란 땅과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주인공 계나의 뉴질랜드 이민 스토리를 다룬 작품입니다. 인생에 어느 한순간쯤은 한국이란 나라에 환명을 느낀 분들도 많으실 텐데 계나의 입에서 등장하는 대사와 내레이션들은 촌철살인처럼 가까운 생활밀착형이라 귀에 착 감기는 맛이 있기도 하네요. 다만 큰 괴리는 그런 고민을 가진 20대 후반의 직장인과 저와의 문화와 생활차에서 오는 것들이었네요. 원작이 거의 9년 전에 나왔는데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한국이지만 MZ로 대표되는 젊은이들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시의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계나의 상황은 너무나 안타깝고 틀린 말 하나 없는데 반대로 직장도 있고 남친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종종 투정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며 종종 느끼는 감정들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가치관의 차이처럼 보였네요. 이 영화의 모든 것에 동의할 순 없다곤 해도 근본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 나선 용기나 주체적인 결정을 하는 부분 등은 박수 쳐주고 싶은...
그 여름날의 거짓말 감독 손현록 출연 박서윤, 최민재, 유의태, 윤재인, 김채원, 국형 개봉 2024.08.28. 6월에 <양치기>란 작품이 있었습니다. 저도 리뷰를 한 한국 독립 영화인데 같은 배급사에서 배급사는 <그여름날의거짓말>을 함께 보니 거짓말 2부작 같은 느낌이 드네요. 조금 더 개인과 개인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던 <양치기>와는 달리 <그여름날의거짓말>은 예상과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네요. 고1 남녀 학생의 풋풋한 사랑을 그리며 그 과정에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는, 은근히 귀여운 소품 같은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특히나 여름의 바다와 계곡 등을 배경으로 하기도 하니 청춘의 싱그러움과 여름 냄새가 나는 그런 작품 말이죠. 그런데 이 작품, 로맨스이기도 하지만 미스터리 구성을 가진 작품이었네요. 방학을 마치고 방학 숙제로 제출한 내용 때문에 반성문을 쓰며 선생님과 대화하는 주인공의 진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마치 <유주얼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인가 싶은 느낌도 드네요. 방학 시작과 함께 이별 통보를 받은 소녀의 삶을 뒤흔든 남친의 바람피운 소식으로 영화는 전혀 예상치 않은 반향으로 흘러가네요. 때론 너무 영화적인가 싶을 정도로 블랙 코미디 같다가도 반대로 리얼한 구석도 잃지 않는 영화의 전개는 정말 한치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네요. 영화의 제목에 드러나듯 여주인공의 거짓말과 진실 사이에서 영화는...
늘봄가든 감독 구태진 출연 조윤희, 김주령, 허동원, 정인겸 개봉 2024.08.21. 한국의 3대 폐가로 일컬어지는 늘봄가든을 전면에 내세운 <늘봄가든>은 <곤지암>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입니다. 장소 그 자체에 집중했던 <곤지암>이라면 <늘봄가든>은 그곳에 머물고 있는 정체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면 늘봄가든이란 공간은 그저 공포 스토리에 이식한 정도로 생각되는, 그러니까 제목으로 관객의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있지만 정작 재밌게 보고 나서도 늘봄가든과 영화의 연결성이 느슨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죠. 영화는 늘봄가든이란 곳의 탄생 비화를 다루듯 영화의 성패와 의지에 따라 시리즈로 이어갈 여지도 충분히 있네요.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는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와 비슷합니다. 대저택 수준의 배경과 관객을 자극하는 삐거덕대는 소리와 정체 모를 존재의 등장 방식 등 동양적인 방식보단 서구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편인데요. 대신 디테일을 따지자면 상당히 동양적인 정서를 뽐내고 있습니다. 나아가 한국적이라고나 할까요. 서양적인 배경에다 동양적인 디테일이 합쳐져서 다소 몰입하기 힘들었던 한국 호러 영화들 대비 꽤나 잘 갖춰진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떡밥과 같은 상황과 캐릭터를 던져주고는 후반부에 싹 정리하는 방식인데 몇 가지를 제외하곤 이야기의 아구를 잘 맞췄습니다. 대신 호러의 강도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기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