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가난
520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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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가난, 박완서 단편소설 : 기어이 나를 죽인 것

아침식사를 하는 연인이 찌개 속의 멸치를 두고 대화를 나눈다. 멸치 눈깔이 징그럽다며 대가리를 좀 따고 넣는 게 어떠냐고 투덜거리는 남자 앞에서 여자는 여봐란듯이 멸치의 대가리를 입에 넣고 자근자근 씹는다. “파리똥만한 눈깔 따위에 다 신경을 쓰는(383쪽)” 남자의 태도는 여자를 아니꼽게도, 불안하게도 만드는 일이지만 결국 그들은 낄낄거리며 식사를 마친다. 그러면서 여자는 둘이서 같이 사는 게 좋지 않냐고 묻는다. 여자는 답이 듣고 싶다. 같이 살자는 말은 제가 먼저 했어도 좋아하는 말은 그에게 먼저 듣고 싶다. 산동네 사글셋방에서 연탄 한 장을 아끼며 사는 가난한 삶이지만 그들에게 슬픔 같은 막막한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멸치의 허연 눈깔이 추한 주검의 눈동자와 겹쳐지기 전까진 그러하다. 박완서 단편소설 「도둑맞은 가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수록, 문학동네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은 화자인 ‘나’가 상훈이라는 남자와 함께 사는 동안 일어난 일을 그린 소설이다. 가난한 형편에도 꿈과 미래를 향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던 한 여성이 그 모든 걸 놓아버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화자는 오 원짜리 풀빵을 사 먹으러 갔다가 상훈을 만난다. 서로 비슷한 처지일 거라는 전제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 처음부터 다른 양상을 띄고 있었지만, 화자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두 사람의 간극은 화자가 상훈의 면면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방식...

2022.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