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토끼
2202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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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인간을 : 저주토끼, 정보라 SF 호러 소설집 추천

인간은 생명을 창조하지만 배설물을 창조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어느 날 변기에서 튀어나온 ‘머리’가 “어머니”하고 부른다. 충격적인 도입부로 시작하는 「머리」는 한 여성이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뒤 그 아이가 한창때의 자신만큼 자라게 될 때까지 ‘머리’와의 불쾌한 동거 생활을 그린다. 아이와 머리가 자라는 동안 모체인 ‘그녀’는 늙는다. 젊음이 그립고 애틋해 보일 시기에 접어든 여성의 쓸쓸함과 헛헛함이 고조될 때 창조물과 대체되는 결말은 모체가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었다는 걸 보여준다. 엄마의 자리는 없고 아이(혹은 머리)의 존재만 남아있다는 듯이. 이러한 모체의 존재감은 「몸하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생리가 멈추지 않아서 피임약을 오래 복용했다가 임신을 하게 된 김영란은 산부인과 의사로부터 “아이 아빠가 돼줄 사람부터 찾으”라는 말을 듣는다. 아빠가 있어야지 태아가 제대로 발육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를 위해 가족들은 맞선을 주선하고 아이의 아빠를 찾는 신문 광고를 낸다. 불가능한 임신 과정과 태아 발육에 직접 관계된 산모를 차치하고 주변인도 사회도 오로지 아이의 아빠만은 요구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산모에게 묻는다. 임신이 혼자만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일이라면 모체의 고유한 영역의 일일 텐데도 불구하고 세상이 요구하는 바는 한결같다. 우리는 이 사회를 어떻게 ...

20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