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눈은 내리고 쌓였을 것이니, 텅 빈 광장에서 홀로 온몸으로 눈을 맞이한 자전거, 하나 있었으니. 첫눈 이영광 사랑이 사람이 되듯이 사람으로 힘없이 내려앉고 말듯이 질척이는 골목에 털썩털썩 몸 부리는 눈발들 음푹, 안아줄 발자국도 덮어줄 발자국도 나서지 않는 새벽 골목이 젖은 살을 열린다 엔다 사람이 사랑이 되듯이 사랑으로 다시 한발짝 올라서듯이 몸 쌓는 눈발들 골목의 키가 자란다 바닥에, 바닥에 가슴이 생긴다 이영광 시인 시집 <나무는 간다>에 놓아둔 詩 '첫눈' 십일월에 첫눈이 내린 건,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뉴스에선 11월에 첫눈이 내린 것을 두고 117년 만에 찾아온 일이라고 한다. 새벽 내내 눈이 내렸고, 오후 내내 눈은 내리고…. 나는 117년 전의 사람들 표정을 떠올려본다. 늦가을 같던 풍경이 하루아침에 겨울로 표정을 바꾸고, 그때도 지금의 나처럼 누군가는 '11월 첫눈'을 보면서 가슴 설레고 있었으리라. 나무는 간다 | 이영광 - 교보문고 나무는 간다 | 모순덩어리의 사회를 질타하며, 결연한 시정신을 보여준다!2011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며 시단의 주목을 받아온 이영광 시인의 시집 『나무는 간다』. 무고한 죽음을 낳는 참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모순 덩어…… product.kyobobook.co.kr <나무는 간다> 이영광 지음_창비_초판 1쇄 2013년 8월 30일 창비에서 지난 2013년 8...
김용택 시인이 고른 인생시 100편 열일곱 살이라고 해서 인생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나이 예순이라고 해서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김용택 시집 <인생은 짧고 월요일은 길지만 행복은 충분해> 책머리 글 中 김용택 시인이 직접 고른 인생시 100편을 모아 놓은 시집. <인생은 짧고 월요일은 길지만 행복은 충분해>라고 조금 긴 제목을 가진 시집을 펴고 읽는 밤. 자정 무렵 라디오에선 크리스마스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러고 보니 이제 며칠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한해살이가 참 빠르구나 싶어지는 날. "당신의 인생은 지금 어느 시간을 지나고 있나요?"라고 묻는 시집을 펴고, 결 고운 시를 골라 옮겨봅니다. 내일 미첼 마크 내일은 누군가에게 건네 보라. 네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미소를. 내일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 네가 연민을 느끼고 있던 사람을. 내일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 보라. 너의 하루를 밝게 빛나게 할 사람에게 무조건 친절한 인사말을 건네 보라. 너의 감정을 드러내라 <인생은 짧고 월요일은 길지만 행복은 충분해> 54쪽 詩 '내일' 두 주 정도 남아 있는 달력 속 숫자를 세어보면서, 문득 '아무 조건 없이 그 누군가에게 따스한 마음을 나누어 준 때가 언제였던가?'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올해는 서너 번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더군요. 작은 것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건네는 순간, 행복은 받는 사람에게도...
좋은시추천 고영민 시인의 詩 '원두' 中 생각 하나_____ 다시 찾은 일상에 관해 생각하는 어느 오후. 지난밤에 일어난 일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잠시 놓아둡니다. 마음의 분란이나 생각의 번잡스러움이 한꺼번에 어딘가에 정착된 기분이라고 할까요? 지난 밤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정오를 지나쳐가는 일요일 어느 한때, 햇살은 따스하고.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결도 창백한 독기가 조금 사라진 듯, 합니다. 평온함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싶어지는 날. 스페셜티커피를 마시며 고영민 시인의 詩 '원두'를 필사노트에 옮겨봅니다. 원두 고영민 원두를 넣고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린다 기다려 커피 한 잔을 받아와 창가에 앉았다 꽃나무들이 물을 부어 꽃을 내린다 한 철 허공에 필터를 받쳐놓고 꽃차를 우려낸다 몇 차례 뜨거운 비가 꽃가지 사이를 왔다 갔나 올봄 당신은 저 나무에게서 몇 잔의 뜨겁고 진한 꽃차를 얻어 마셨나 어제는 먼지 이는 꽃나무 밑으로 외국인 노동자 몇명이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지나갔다 걸으면서 자꾸 자꾸 자꾸 입맞춤을 하던 달콤한 연인이 지나갔다 유치원생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전동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여자가 얼굴을 묘하게 일그러뜨리며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중년의 여자가 큰 개를 끌며, 끌려가며 지나갔다 고영민 시집 <사슴공원에서> 속 詩 '원두' 커피와 시는 바쁜 일상에 '쉼표'처럼 작용합니다. 여백과 공백이나, 고독과 외...
국민이 지키고, 이끌고, 결국 미래로 나아가는 나라. "이게 나라다!" 『그날 또 그날, 그 겨울과 밤과 봄의 그날들. "이게 나라냐" 울분과 부끄러움으로 촛불을 들고 "나라도 나가야지" 눈발을 뚫고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 슬픔과 분노로 타오르던 불의 사랑, 불의 혁명, 우리가 손에 든 것은 촛불이었지만 우리 가슴에 든 것은 혁명이었다. (……) 그 추웠던 겨울 주말마다 촛불광장으로 나와 나라를 살려내고 인간의 위엄을 빛내주신 그대의 언 발등에 입맞춤을 보낸다. 힘겨운 나날 소속에서도 곧고 선한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그대 젖은 어깨 위에 늘 무지개 뜨기를. 2017년 10월 박노해』 _ <촛불혁명> 18~25쪽 서(序) 글 中 2024년 12월 14일 토 "윤석열 탄핵안 가결" 국회 통과 대한민국의 역사는 일부 특권층과 계급과 혹은 몇몇의 권력자들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 나라임을, "우리 국민이 주권의 실체이며 중심축"임을 보여준 날. 2024년 12월 14일 토요일 오후 4시부터 "윤석열 탄핵안 가결"이란 말이 울려 퍼지는 지금 이 순간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 2024년 12월 3일 22시 30분, 대한민국 헌법이 유린당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심장이 멈추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께서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셨습니다. 국회 앞으로 한달음에 뛰쳐나와 맨몸으로 계엄군 차량을 막아섰습니다. 국회를 봉쇄한 경찰에 항의하며 ...
나태주 시집 <사랑만이 남는다> 4쪽 '시인의 말' 中 『누군가, 나보다 나이 젊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서 묻는다면 첫째도 사랑이고 둘째도 사랑이고 셋째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랑하지 못해서 우울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슬프고, 사랑하지 못해서 불안하고, 끝내 사랑하지 못해서 불행했던 거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문인 셰익스피어는 그의 소네트에서 인간이 영원히 사는 길은 '자식'과 '사랑'과 '사랑의 시'라고 말했다고 그럽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시로 쓰며 그 시와 함께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사는 목숨이고, 더구나 시의 대상이 된 사람은 죽지 않은 사람으로 숨 쉬게 됩니다.』 _ 책 4쪽 '시인의 말 _ 사랑만이 답입니다' 中 겨울 차창 나태주 너의 생각 가슴에 안으면 겨울도 봄이다 웃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겨울에도 꽃이 핀다 어쩌면 좋으냐 이러한 거짓말 이러한 거짓말이 아직도 나에게 유효하고 좋기만 한 것 지금은 이른 아침 청주 가는 길 차창 가에 자욱한 겨울 안개 안개 뒤에 옷 벗은 겨울나무들 왜 오늘따라 겨울 안개와 겨울나무가 저토록 정답고 가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냐. 나태주 시인 <사랑만이 남는다> 78~79쪽 詩 '겨울 차창' "사랑은 우리 가슴에 늘 준비된 마음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짧고 단순하며 이해하기 쉽고' 그래서 울림이 크게 다가오곤 하죠. 특히 나태주 ...
공기는 차고, 햇살은 밝고, 커피 잔 속 향은 뜨겁던 어제 오후. 정호승 시인과 만나지는 못했지만, 시인과 전화 통화를 두 번 했다. 2005년 5월 어느 무렵으로 기억한다. 회사가 서울 등촌동에 사옥을 새로 지었고, 도로를 향해 있는 외벽에 '무언가를 걸어 회사를 홍보하자'는 의견이 회의 때 나왔다. 누군가는 회사가 펴낸 그림책을 홍보하자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라는 짧은 글로 인사를 대신하자고 했다. CEO가 "편집팀 생각은?"이라고 물었고, 나는 "정호승 시인님의 詩를 외벽에 걸면 어떨까요?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는…." 의견을 내자마자 CEO는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라며 긴 회의에 마침표를 찍었다. 소년 정호승 온몸에 함박눈을 뒤집어쓴 하얀 첨성대 첨성대 꼭대기에 홀로 서서 밤새도록 별을 바라보다가 눈사람이 된 나 정호승 시인 시집 <밥값> 100쪽 詩 '소년' 회의가 끝나고, 나는 서너 곳에 전화를 걸어 "정호승 시인님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라고 묻고 다녔다. 누군가는 "개인 정보라 알려 드릴 수가 없어요."라고 답했고, 또 다른 이는 "시인협회로 문의하여 보시면 어떨까요?"라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개인 정보라서 알려줄 수 없다는 이의 말은 '일리가 있다'라고 생각했고, 시인협회로 문의하라는 말엔 고마웠다. 어찌어찌 다른 곳에서 시인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그렇...
미디어창비 시선집 <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 41쪽 조말선 시인의 시 '눈덩이' 시작은 나였어 나를 묻히고 나는 굴러간다 조말선 시인의 詩 '눈덩이' 中 조말선 시인의 詩 '눈덩이' "나를 묻히고 나는 굴러간다"라는 시구 속에서 무수히 많은 감정이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듯싶어서…. 그래서일까? 포토샵 단축키를 잘못 눌렀더니 '사진 컬러가 반전' 되었다. 때론 이렇게 흰 것이 흑으로, 흑이 백으로 뒤바뀐 이미지를 보고 있으면…. 결과치를 알고 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선명해지는 '그 무엇' 앞에서 새삼 조금 놀라곤 한다. 시작과 끝에 놓인 시구가 뭐랄까? 좋아서 자꾸 되새겨 읽게 되는 시. 조말선 시인의 눈덩이 전문을 옮겨 본다. 미디어창비 시선집 <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 42쪽 조말선 시인의 시 '눈덩이' 눈덩이 조말선 시작은 나였어 나를 묻히고 나는 굴러간다 나는 아니야,라고 외치는 나를 묻히며 굴러간다 너도 그랬잖아,라고 외치는 나만 묻히며 굴러간다 옷 갈아입을 시간을 줘,라고 외치는 나를 묻히며 굴러간다 나는 나에게 묻힌다 내 무덤을 내가 만든다 나도 같이 가,라고 외치는 너에게 힘껏 눈덩이를 던진다 나는 제대로 박살난다 나에 대해서 가속도만 붙는다 나는 밤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나는 이튿날 눈 녹 듯 사라진다 미디어창비 시선집 <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 42쪽 조말선 시인의 시 '눈덩이' ...
정호승 시집 <밥값> 10쪽 詩 '봄비' 봄비 정호승 어느날 썩은 내 가슴을 조금 파보았다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흙에 꽃씨를 심었다 어느날 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 너무 궁금해서 조금 파보려고 하다가 봄비가 와서 그만두었다 정호승 시집 <밥값> 10쪽 詩 '봄비' 정호승 시 <밥값> 시집추천 어머니시 좋은시추천 감동적인시 밥값 정호승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 blog.naver.com ▲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정호승 시인의 시집 <밥값>에 관한 더 자세한 시집 소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정호승 시집 <밥값> 20쪽 詩 '고비' 고비 정호승 고비 사막에 가지 않아도 늘 고비에 간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서 오늘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 이번이 마지막 고비다 정호승 시집 <밥값> 20쪽 詩 '고비' 정호승 시인의 시집 <밥값> 『 인생이란 어쩌면 애초에 품었던 희망과 꿈 들을 하나하나 지워가고 비워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과 꿈이 단순히 도달 불가능해서가 아니다. 도달한다는 것 자체가 더 큰 틀에서 보면 의미없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또다른 인위적인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자연에서 멀어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걸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인간다...
겨울 나무와 강지이 시인의 시 '그림자 극장' 中 대여섯의 나무, 하늘을 수놓은 까만 나뭇가지 그 사이를 지나는 암청색의 빛 어디까지 갈지도 모르고 더 높이 닿을 수도 없을 것만 같은데 나뭇가지는 쉬지 않고 조금씩 하늘로, 더 위로 나아간다. 그런 아름다움을 보며 평생을 견디고 있다. 강지이 시인의 詩 '그림자 극장' 中 어느 겨울 눈 쌓인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렸고, 그 틈으로 다시 눈이 조금 내리기도 하였다. 그 순간 나는, 내게 다가온 시련을 조금씩 털어내고 있는 듯 여겨졌으니... …… 더 높이 닿을 수도 없을 것만 같은데 나뭇가지는 쉬지 않고 조금씩 하늘로, 더 위로 나아간다. 푸른 잎 모두 떨구어 내고도 나무는, 참 나무답게 살아가려고 애쓰는구나 싶었는데요. 그러다가 강지이 시인이 詩를 읽으면서 '아, 나무도 힘겹고 고독한 시간을 나름의 방식으로 견디는구나.' 싶더군요.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 강지이 - 교보문고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 물처럼 투명히 빛나는 날들이 지속되지 않아도 그곳이 어디든 이렇게 서 있을 수 있다 궤도 안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빛나는 생활의 감각 충만한 미래를 향한 젊은 시인의 다채로운 시…… product.kyobobook.co.kr 그림자 극장 강지이 커다란 창이 있는 방이었다. 창밖으론 대여섯의 나무가 줄을 맞춰 드문드문 서 있고 그들은 저마다의 잎사귀와 얇거나 굵거나 딱 그 중간...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18쪽 詩 '한계선' 中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더는 나아갈 수 없다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여기서 돌아서면 앞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너는 도망치게 되리라 박노해 시인의 詩 '한계선' 中 사람의 일이란 게, 사람의 생각이란 게, 하루에도 수십 번 변화하고 바뀌기 마련이니. 그러니 당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은, 자기 스스로 등에 지고 평생 동안 걸어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역사의 기록'은 당신의 생각처럼 '오늘의 일'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실을 기록만으로 남기지 않는다. 미래의 누군가는 '오늘의 당신이 행한 행동'에 관해 상상할 수 없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그렇게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수백 년 전 유일무이한 왕들조차도 두려워 한 것이다. 정의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손에 의해 정의된다. <필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기원전 431~404년. 고대 그리스는 자신들이 일궈놓은 거대 문명과 시스템 속에서 커다란 변화의 시간에 놓인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주요 동맹 간의 전투가 가져온 결과는 '그리스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전쟁은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민주주의와 힘의 대결...
이창훈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14쪽 詩 '음악' 음악 이창훈 먼 곳의 너를 더 이상 볼 수 없어 듣는다 눈 감고 너를 듣는다 이창훈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14쪽 詩 '음악' 밤의 정막, 소리 없는 밤 그 틈으로 흐르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음악은 소리와 조금 달라서, 말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니고 있죠. 사람들 속에서 종일 시달리고 돌아온 밤, 그 시간이면 그래서 그렇게 '음악'에 귀 기울였는지도 모릅니다. 밤의 정막, 10시에서 자정까지 라디오를 듣습니다. 한낮의 라디오와 달리 소란스럽지도 않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도 방해하지 않은…. 볼륨을 적당하게 맞춰 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듣는 라디오는, 지금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사물이죠. 조금 전엔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 전파를 타고 흘렀고, 음악이 끝나자 DJ는 청취자 사연 하나를 꺼내 읽습니다.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사연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귀를 기울'입니다. 이창훈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23쪽 詩 '독감감' 독감 이창훈 아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지독하게 앓는 것이다 이창훈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23쪽 詩 '독감감' 밤과 시 그리고 음악은 하루를 마감하기 좋은 벗이 되어 줍니다. 가진 것을 나눠주는 일, 그것이 향하는 쪽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은교 시인의 詩 '새벽 바람' 中 이제 일어설까, 일어서 떠나볼까 가장 작은 지상의 것들이 나를 부르고 있으니 사진 이미지를 인버스하여 보았다. inverse _ 정반대, 뒤집다의 뜻을 지닌 단어인데. 생각도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입장(立場)'이란 단어의 뜻은 "당면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데. 이 단어는 일본식 한자어다. 흔히 "당신들도 입장을 한번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라거나. "우리 입장은… 이렇습니다."라고 말할 때 사용한다. 요즘 자주 듣는 단어 가운데 하나다. 외래어든 일본식 한자어든 핏대 세워가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부터 그 쓰임을 줄이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연필꽂이하루일기 메뉴 좌측에 있는 검색창에 '입장'을 넣어 결과값을 보니 87건이 나온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과로 보여준 수치보다 조금 더 사용했을 것이다. 일본식 한자어인 입장을 비슷한 말로 바꾸면 '상황, 처지, 상태 등'으로 적절하게 바꿔 쓸 수 있으리라 여긴다. 문득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생각의 폭을 결정하는구나 싶어졌다. 요즘 자주 눈에 띠는 말은…. "비상계엄의 위헌과 위법성과 관련하여 우리 당의 공식 입장은…"이다. 야당인 민주당의 폭거에 경고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그의 변명을 보고, 섬뜩했다. 국민의 군대를 갖고 한낱 정치판에 이용한 사람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
<나태주 육필시화집> 52~53쪽 詩 '첫눈' 첫눈 나태주 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젯밤에도 깜깜한 밤 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깜깜한 마음이었다 몇 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던 마음 깜깜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나태주 육필시화집> 52~53쪽 詩 '첫눈' 나태주 시인이 직접 쓰고 그린 '육필시화' 시인의 글꼴은 시인처럼 동그랗습니다. 모난 곳 세월에 다 깎이었는지. 아니면 본디부터 모난 곳이 없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시인의 글꼴은 참 동그랗습니다. 시인의 눈망울처럼 그 마음처럼 동그랗죠. 나태주 시인의 <육필시화집>은 시인이 직접 쓰고 그린 그림과 글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시집 한 권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면 <나태주 육필화시집>을 추천합니다. 나태주 육필시화집 | 나태주 - 교보문고 나태주 육필시화집 | 나태주 육필시화집은 나태주가 직접 쓴 시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product.kyobobook.co.kr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_ 그리움에 관한 나태주 시인의 짧고 좋은 시 모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애니메이션 <초속5센티미터>를 만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주말 저녁 호수... blog.naver.com ▲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호수 공원과 시집 풍경, 그리고 시집에 관한 조금 더 자세한 글과 시를...
가을이 떠난 자리를 겨울이 채우면서 만들어진 풍경. 거리엔 두툼한 겨울옷을 입고, 어깨를 잔뜩 움추리고 걷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들의 하늘엔 사진처럼 붉은 노을이 펼쳐져 있었고요. 먼 후일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김소월 시인의 시집 <진달래꽃> 13쪽 詩 '먼 후일' 가는 길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 시인의 시집 <진달래꽃> 164쪽 詩 '가는 길' 한국 시집 초간본 100주년 기념판 <진달래꽃> 김소월 지음_열린책들_초판 1쇄 2022년 3월 25일 김소월(1902~19314) 시인은 우리나라 현대문학 그 가운데 대표적인 근대시인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본명은 정식이고 소월은 시인의 호입니다. 시인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시를 지었습니다. 우울하고 어두운 시대에도 민족 정서를 잃지 않기 바라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겠지요. 아무리 어두워도 새날은 찾아오는 법. 제 아무리 슬퍼도 언젠가 눈물은 마르는 ...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 中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 .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 中 <매일, 시 한 잔> 시집 속 _ 김인육 시인의 시를 읽으며 어느 날 라디오를 듣는데,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누군가의 사연이 전파를 타고 흐르더군요. "우연이었어요. 그 사람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을까요?"라고 시작하는 사연 속 주인공. 그녀의 짧은 편지가 라디오 DJ의 음성을 타고 전해지는걸. 그 사람도 알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래요. 사랑은… 참 쉽지 않은 일이죠. 사랑을 노래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했지요.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의 목적을 주지 않아요.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이 글은 릴케가 노래한 사랑의 시 가운데 「사랑의 노래(sonnet 8)」의 첫 시구입니다. 릴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한 어떤 생각을, 그러니까 성찰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 가운데 제일 앞자리에 '사랑'을 놓아둔 시인이죠. 릴케는 사랑을 통해 삶의 완성을 추구했고, 그러는 동안 생겨나는 복잡한 갈등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곤 했습니다. 그래요. 사랑에 관해서라면 누구라도 한 마디쯤 할 수 있지만, 릴케의 사랑이나. 라디오로 첫 사랑을 고백한 누군가의 사...
이정록 시인의 詩 '작은 램프' 中 어둠이 놀라서 달아나지 않을 만큼만 네가 너무 환해서 다른 이가 어두워지지 않을 만큼만 작은 빛이 되자 네가 네 어둠을 찾을 수 있을 만큼만 이정록 시인의 詩 '작은 램프' 中 까짓것 | 이정록 - 교보문고 까짓것 | ‘창비청소년시선’ 아홉 번째 이정록의『까짓것』은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 관심이 더 많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시집이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대학 입시와 공부에 관심을 가지길 원하지만 청소년…… product.kyobobook.co.kr <까짓것> 이정록 지음_창비교육_초판 1쇄 2017년 6월 15일 창비교육에서 지난 2017년 6월 펴낸 이정록 시인의 시집. <까짓것>은 창비 청소년 시선 시리즈 가운데 9번째 시집입니다.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 가운데 '작은 램프' 첫 시구는 언제 읽어도 좋습니다. 작은 램프가 해야 할 몫을 통해 우리도 어떻게 생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읽는 독자에 따라, 시인의 시는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겠지만…. 어떤 일을 하다가 조금 낙담할 땐, 이정록 시인의 시 '작은 램프'를 꺼내 읽습니다. 그 시를 옮겨 놓습니다. 작은 램프 이정록 어둠이 놀라서 달아나지 않을 만큼만 네가 너무 환해서 다른 이가 어두워지지 않을 만큼만 작은 빛이 되자 네가 네 어둠을 찾을 수 있을 만큼만 달맞이꽃이 움츠러들지 않을 만큼만 고무래나 대빗자루가...
긴 여름에 비해 짧은 시간이지만, 눈부신 햇살을 만날 수 있는_겨울 햇살은 어떤 색으로 어떻게 떨어질까 전성호 시인의 詩 '햇살 공부' 햇살의 길이로 본다면, 겨울보다 여름이 더 길겠지만. 그건 사람의 시선에서 느끼는 것. 햇살의 위치에서 본다면, 햇살은 봄이나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에도 한결같이 '빛나고 있음을 느낀 오후'였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 버스 정류장에서 더디게 오는 차를 기다리면서 그래도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던 건. 건물과 건물 사이, 나뭇잎과 나뭇잎 틈새로 '짠'하게 다가온 햇살 때문이었는데요. 그 햇살이 얼마나 눈이 부시던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긴 여름에 비해 짧은 시간이지만, 눈부신 햇살을 만날 수 있는 겨울도 좋다."라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전성호 시인의 詩가 떠오르더군요. "햇살은 어떤 색으로 어떻게 떨어질까"라고 시작하는 시입니다. <캄캄한 날개를 위하여> 전성호 지음_창비_초판 1쇄 2006년 5월 5일 햇살 공부 전성호 햇살은 어떤 색으로 어떻게 떨어질까 구름과 구름 사이 한달음에 내려앉는 선연한 모습 서쪽 하늘 해 넘는 벼랑에서 불끈 솟는 대작대기 빛의 높고 큰 힘처럼, 그것은 한여름 뙤약볕에 등줄기 까맣게 그을려 생채기를 남긴 그림자를 따뜻하게 입혀주는 언어의 무늬들 구름을 앞가리개 삼아 부끄럼으로 제 빛 뽑아내는 햇살 쓰러지고 꺾일지언정 끊어지지 않는 빛의 절개는 공전...
나태주 시인 시화집 <너도 그렇다> 참 둥근달이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밤, 입니다. 밝기는 또 왜 그리도 참 맑게 빛나는지요. 자칫하면 밤하늘에 뜬 작은 태양 혹은 둥근 별인 줄… 알았네요. 밤 10시에서 자정까지 두 시간은 가능한 일하지 않고, 라디오를 들으면서 서가를 어슬렁거립니다. 그러다가 눈에 띈 책 하나를 골라 가벼운 마음을 글을 옮기죠. 누군가를 인터뷰한 후 기사를 쓰거나, 혹은 도서 서평 쓰는 일로 하루를 보내면 '생각보다 쉽지 않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밤 10시~ 자정 무렵이면 또 이게 참 행복한 일이지… 라고 여기게 됩니다. 나태주 시인 시집 <너도 그렇다> 50쪽 詩 '풀꽃'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 시집 <너도 그렇다> 50쪽 詩 '풀꽃'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그래서 조금 아쉬운 시집. 도서출판 종려나무에서 펴낸 나태주 시인 시집 <너도 그렇다>는 지난 2009년 3월 펴낸 '나태주 시인의 시화집'입니다. 시인이 연필로 직접 그린 그림과 시를 담고 있는 시집입니다. 어떤 이유로 절판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금 안타깝구나 싶습니다. 나태주 시인 시집 <너도 그렇다> 53쪽 詩 '행복복' 행복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 나태주 시인 시집 <너도 ...
이종민 시인의 시와 김계호 작가의 사진 뒷면은 볼 수 없으니까 먼 곳일까요 이종민 시인의 詩 '우리를 말하면 멀어지는' 좋은시구절 늦은 밤, 그러니까 자정 무렵. 이종민 시인의 시집 속에 담긴 詩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꺼내 읽는 늦은 밤. 좋은 시구절 하나에, 그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짧은 시에 그토록 깊은 시구가 놓여 있을 때,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곤 합니다. 뒷면은 볼 수 없으니까 먼 곳일까요 그것을 마음이라고 불러도 될까 싶으면 이종민 시인의 詩 '우리를 말하면 멀어지는' 좋은시구절 미셸 투르니에의 글에 에드아르 부바의 사진을 더해 만들어진 책. <뒷모습>에 놓여 있는 문장이 생각나더군요. 현대문학에서 펴낸 사진 에세이 속 문장은…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뒤쪽이 진실이다.』 _ <뒷모습> 中 좋은 시구나 문장을 읽고 나면, 언제나 생각은 그리운 무언가를 향해 떠나갑니다. 떠나간다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이별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여행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마음 챙김의 시가 되어준, 이종민 시인의 시 '우리를 말하면 멀어지는'을 김계호 작가의 사진 작품 '흰 달'에 새겨 놓아 보았습니다. 이종민 시인의 詩 '우리를 말하면 멀어지는'에 김계호 작가의 사...
김용락 시인의 詩 '가을' 中 가을 김용락 살아가는 게 문득 낯설 때가 있다 대구 근교 팔공산 언저리 이씨네 과수원 잘 익은 사과가 가을비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다 그 곁 허물어진 봉분 위의 누런 풀들이 부활의 수신호를 어디론가 보내고 있다 살아가는 건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하는 것일까? 김용락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에 놓아둔 詩 '가을' 가을산 김용락 문득 쳐다본 가을산이 저물고 있다 상처입은 단풍잎 몇 몸에 매단 채 어둠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가을산의 섭리와는 달리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묘미이다 또한 이것이 불가능한 사랑을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에 패배가 있듯이 인생에도 패배는 있는 법이다 앙상한 뼈가슴을 드러낸 채 산이 오늘 어둠속에 묻혀도 내일이면 한낮의 단풍보다 더 아름다운 별이 산 위에 뜬다 김용락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에 놓아둔 詩 '가을산' 어느 날 가지런히 날개를 펴고, 가을 햇살을 받아들이던 잠자리. 창비에서 지난 1996년 6월 펴낸 김용락 시인의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는 방황 후 진실한 내면의 목소리를 담아 시어로 옮겨 놓았습니다. 시집 속 시 하나하나를 꺼내 읽다보면, 무언가 애잔한 감정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시집 속에서 김용락 시인은 "산이 오늘 어둠속에 묻혀도 / 내일이면 한낮의 단풍보다 더 아름다운 / 별이 산 위에 뜬다"라고 희망찬 언어로 말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