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레제 에디션 <일뤼미나시옹> 아르튀르 랭보 지음_페르낭 레제 그림_신욱근 옮김_문에출판사_초판 1쇄 2023년 12월 8일 출발 아르튀르 랭보 충분히 보았다. 비전은 어느 하늘에나 존재했다. 충분히 가졌다. 여러 도시의 소문은 저녁에도, 햇살에도 그리고 언제나. 충분히 알았다. 삶이 멈춘 순간들. -- 오 소문과 비전이여! 새로운 애정과 새로운 소리에 휩싸여 출발! <일뤼미나시옹> 31쪽 랭보 詩 '출발' 새벽 아르튀르 랭보 나는 여름의 새벽을 껴안았다. 궁전 높은 곳에는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물은 죽은 듯했다. 어둠의 진영은 숲속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걸었다. 생기와 온기가 깃든 숨결 깨우며, 그러자 보석들이 쳐다보았고, 날개들이 소리 없이 일어났다. 첫 번째 시도는 선선하고 희미한 빛이 벌써 가득한 오솔길에서 내게 자기 이름을 말하는 꽃 한 송이였다. 나는 전나무 숲 너머에 머리를 풀어 헤친 금발의 폭포에게 미소 지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꼭대기에서 나는 여신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베일을 하나씩, 하나씩 들추었다. 가로수길에서는 양팔을 마구 흔들었다. 들판을 가로지르며, 수탉에게 여신이 왔다고 고해바쳤다. 대도시에서 여신은 종탑과 돔 지붕 사이로 달아났고, 나는 대리석의 강둑을 거지마냥 달리며 여신을 쫓았다. 도로 저 위, 월계수 숲 근처에서, 나는 겹겹이 쌓인 베일로 그녀를 감싸 안았고, 그 거대한 육체...
문예세계 시 선집 <헤르만 헤세 시집> 헤르만 헤세 지음_송영택 옮김_문예출판사_초판 1쇄 2013년 5월 20일 마을의 저녁 헤르만 헤세 양 떼를 몰고 목동이 호젓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집들은 잠이 오는 듯 어리마리 벌써 졸고 있다. 나는 이 마을에서, 지금 단 하나의 이방인. 슬픔으로 하여 나의 마음은 그리움의 잔을 남김없이 마신다. 길을 따라 어디로 가든 집집마다 아궁이에 불은 타고 있었다. 오직 나만이 고향을, 조국을 느껴보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 시집> 12쪽 詩 '마을의 저녁' 날아가는 낙엽 헤르만 헤세 마른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실려 내 앞을 날아간다. 방랑도 젊음도 그리고 사랑도 알맞은 시기와 종말이 있다. 저 잎은 궤도도 없이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만 가서 숲이나 시궁창에서 간신히 멈춘다. 나의 여로는 어디서 끝날까. <헤르만 헤세 시집> 23쪽 詩 '날아가는 낙엽' 문예출판사에서 지난 2013년 5월 펴낸 <헤르만 헤세 시집>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지금 봐도 아름다운 표지를 입고 있더군요. 그러고 보니 헤세의 글이나 그림은 그가 살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떠나서, 21세기에 이르러서 여전히 빛나는 무언가를 지닌 듯합니다. 그것이 아름다움인지, 고결함인지 아니면 헤세가 평생 등에 짊어지고 다닌 예술을 향한 그리움인지…, 모르겠지만. 헤세의 시와 그림을 시집 한 권에서 마주하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헤...
"이 글은 좋은 북리뷰를 응원하는 상아제약으로부터 <로열산양삼환> 광고 & 판매를 통한 수익 일부를 지원받아 쓴 서평입니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편역_한아롱 그림_RHK_초판 1쇄 2015년 12월 15일 … 위로받고 싶다. 응원이 필요하고 파이팅이 필요하다. 머리 조아려 찾아보지만 떠오르는 이름은 마뜩지 않다. 어찌할 것인가?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1~5쪽 '응원이 필요합니다' 中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지난 2015년 12월 펴낸 나태주 시인의 시집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는 평생 시와 함께 한 나태주 시인과 고운 그림 그리는 한아롱 화가의 그림이 어우러진 시화집입니다. 시집을 펴면 꽃처럼 고운 시인의 시와 향처럼 좋은 화가의 그림이 하나로 어우러져 흐릅니다. 그러니까 이 시집은 꽃향이 나는 책이라고 부르고 싶어집니다. 눈썰미 좋은 독자라면 시집 제목을 보고 나태주 시인의 시를 모아 놓은 시집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왜냐하면 국민시라고 일컫는 '풀꽃·1'의 시구 일부를 책 제목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왕 생각났으니 시인의 시를 한 번 옮겨 놓아봅니다. 풀꽃·1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詩 '풀꽃' 中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 외에도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입니다. 시집 서문에 놓아...
정호승 시인 시집 <여행> 13쪽 詩 '이슬의 꿈' 이슬의 꿈 정호승 이슬은 사라지는 게 꿈이 아니다 이슬은 사라지지기를 꿈꾸지 않는다 이슬은 햇살과 한몸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슬이 햇살과 한몸이 된 것을 사람들은 이슬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나는 한때 이슬을 풀잎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새벽별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슬은 울지 않는다 햇살과 한몸을 이루는 기쁨만 있을 뿐 이슬에게는 슬픔이 없다 정호승 시인 시집 <여행> 13쪽 詩 '이슬의 꿈' <여행> 정호승 지음 _창비_초판 1쇄 2013년 6월 17일 창비에서 지난 2013년 6월 펴낸 정호승 시인의 시집 <여행>을 꺼내 읽는다. 간혹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시집을 펴고 이 지상地上에선 갈 수 없는 여행을 시집 속에 담긴 지상紙上을 통해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 시간의 제약도, 공간의 경계도 없이, 시집을 펴는 순간 나의 <여행>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정호승 시인의 시집 <여행> 뒤쪽에는 김영희 시인이 "적멸에게 빈손으로"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달아 놓았다. 그곳에서 "여행이란 흔히 떠남과 돌아옴을 운용 원리로 삼지만 정호승의 여행은 돌아옴을 특별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모종의 사라짐, 그의 여행은 떠남과 비움이라는 존재 형식에 몰두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여행은 문을 '열고' 길을 나서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어느 정도 시간을 거친 후 ...
조재도 시인의 시집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을 읽는 밤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에드거 앨런 포(1809~1849)는 19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1809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포는 2살 무렵 부모가 이혼하게 되고, 그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죠. 비극은 비극으로 이어진다고 했던가요. 포가 3살이던 무렵 어머니 엘리자베스 앨런은 결핵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납니다. 어린 포의 마음속엔 어머니의 부재와 슬픔이 가득했고, 성장 후 그의 문학 작품에 영향을 줍니다.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잃어버린 사랑'은 어머니의 부재로부터 태어났다고 볼 수 있지요. 에드거 앨런 포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의 손길은 언제나 따뜻하고, 그녀의 마음은 끝없이 넓다. 에드거 앨런 포(1809~1849) 서재에 놓여 있는 조재도 시인의 시집을 꺼내 다시 손에 든 밤. 꽃자리 조재도 뒤울안 감나무 앵두나무 라일락 나무 아침부터 어머니 풀을 매신다 뭘 거기까지 매고 그러세요, 하자 조금 있으면 꽃 떨어질 텐디 꽃자리 봐 주면 좋지 않간 아, 꽃자리 꽃 질 자리 꽃을 피우는 건 나무의 마음이지만 꽃 질 자리 봐 주는 건 사람의 마음 어머니 손길이 다녀간 곳 환한 그늘에 소복이 떨어질 조재도 시인 시집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 47쪽 詩 '꽃자리리'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_조재도 지음_열린서가_1판 1쇄 2023년 5월 15일...
김용택 시인이 고른 인생시 100편 열일곱 살이라고 해서 인생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나이 예순이라고 해서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김용택 시집 <인생은 짧고 월요일은 길지만 행복은 충분해> 책머리 글 中 김용택 시인이 직접 고른 인생시 100편을 모아 놓은 시집. <인생은 짧고 월요일은 길지만 행복은 충분해>라고 조금 긴 제목을 가진 시집을 펴고 읽는 밤. 자정 무렵 라디오에선 크리스마스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러고 보니 이제 며칠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한해살이가 참 빠르구나 싶어지는 날. "당신의 인생은 지금 어느 시간을 지나고 있나요?"라고 묻는 시집을 펴고, 결 고운 시를 골라 옮겨봅니다. 내일 미첼 마크 내일은 누군가에게 건네 보라. 네가 여태껏 본 적이 없는 미소를. 내일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 네가 연민을 느끼고 있던 사람을. 내일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 보라. 너의 하루를 밝게 빛나게 할 사람에게 무조건 친절한 인사말을 건네 보라. 너의 감정을 드러내라 <인생은 짧고 월요일은 길지만 행복은 충분해> 54쪽 詩 '내일' 두 주 정도 남아 있는 달력 속 숫자를 세어보면서, 문득 '아무 조건 없이 그 누군가에게 따스한 마음을 나누어 준 때가 언제였던가?'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올해는 서너 번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더군요. 작은 것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건네는 순간, 행복은 받는 사람에게도...
나태주 시집 <사랑만이 남는다> 4쪽 '시인의 말' 中 『누군가, 나보다 나이 젊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서 묻는다면 첫째도 사랑이고 둘째도 사랑이고 셋째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사랑하지 못해서 우울하고, 사랑하지 못해서 슬프고, 사랑하지 못해서 불안하고, 끝내 사랑하지 못해서 불행했던 거라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문인 셰익스피어는 그의 소네트에서 인간이 영원히 사는 길은 '자식'과 '사랑'과 '사랑의 시'라고 말했다고 그럽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시로 쓰며 그 시와 함께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사는 목숨이고, 더구나 시의 대상이 된 사람은 죽지 않은 사람으로 숨 쉬게 됩니다.』 _ 책 4쪽 '시인의 말 _ 사랑만이 답입니다' 中 겨울 차창 나태주 너의 생각 가슴에 안으면 겨울도 봄이다 웃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겨울에도 꽃이 핀다 어쩌면 좋으냐 이러한 거짓말 이러한 거짓말이 아직도 나에게 유효하고 좋기만 한 것 지금은 이른 아침 청주 가는 길 차창 가에 자욱한 겨울 안개 안개 뒤에 옷 벗은 겨울나무들 왜 오늘따라 겨울 안개와 겨울나무가 저토록 정답고 가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냐. 나태주 시인 <사랑만이 남는다> 78~79쪽 詩 '겨울 차창' "사랑은 우리 가슴에 늘 준비된 마음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는, '짧고 단순하며 이해하기 쉽고' 그래서 울림이 크게 다가오곤 하죠. 특히 나태주 ...
<나태주 육필시화집> 52~53쪽 詩 '첫눈' 첫눈 나태주 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젯밤에도 깜깜한 밤 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깜깜한 마음이었다 몇 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던 마음 깜깜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나태주 육필시화집> 52~53쪽 詩 '첫눈' 나태주 시인이 직접 쓰고 그린 '육필시화' 시인의 글꼴은 시인처럼 동그랗습니다. 모난 곳 세월에 다 깎이었는지. 아니면 본디부터 모난 곳이 없었는지… 알 수 없지만. 시인의 글꼴은 참 동그랗습니다. 시인의 눈망울처럼 그 마음처럼 동그랗죠. 나태주 시인의 <육필시화집>은 시인이 직접 쓰고 그린 그림과 글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시인의 시를 좋아하고, 시집 한 권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다면 <나태주 육필화시집>을 추천합니다. 나태주 육필시화집 | 나태주 - 교보문고 나태주 육필시화집 | 나태주 육필시화집은 나태주가 직접 쓴 시와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product.kyobobook.co.kr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_ 그리움에 관한 나태주 시인의 짧고 좋은 시 모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애니메이션 <초속5센티미터>를 만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주말 저녁 호수... blog.naver.com ▲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호수 공원과 시집 풍경, 그리고 시집에 관한 조금 더 자세한 글과 시를...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 中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 .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 中 <매일, 시 한 잔> 시집 속 _ 김인육 시인의 시를 읽으며 어느 날 라디오를 듣는데,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누군가의 사연이 전파를 타고 흐르더군요. "우연이었어요. 그 사람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을까요?"라고 시작하는 사연 속 주인공. 그녀의 짧은 편지가 라디오 DJ의 음성을 타고 전해지는걸. 그 사람도 알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래요. 사랑은… 참 쉽지 않은 일이죠. 사랑을 노래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했지요.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의 목적을 주지 않아요.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지요." 이 글은 릴케가 노래한 사랑의 시 가운데 「사랑의 노래(sonnet 8)」의 첫 시구입니다. 릴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한 어떤 생각을, 그러니까 성찰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 가운데 제일 앞자리에 '사랑'을 놓아둔 시인이죠. 릴케는 사랑을 통해 삶의 완성을 추구했고, 그러는 동안 생겨나는 복잡한 갈등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곤 했습니다. 그래요. 사랑에 관해서라면 누구라도 한 마디쯤 할 수 있지만, 릴케의 사랑이나. 라디오로 첫 사랑을 고백한 누군가의 사...
언제라도 좋은 날, 시 읽기 좋은 날. 바람에게 묻는다 나태주 바람에게 묻는다 지금 그곳에는 여전히 꽃이 피었던가 달이 떴던가 바람에게 듣는다 내 그리운 사람 못 잊을 사람 아직도 나를 기다려 그곳에서 서성이고 있던가 내게 불러줬던 노래 아직도 혼자 부르며 울고 있던가. <나태주 연필화 시집> 138쪽 詩 '바람에게 묻는다' 나태주 시인이 연필로 그린 그림과 시가 함께 들어 있는 <나태주 연필화 시집> 중국 현대 문학을 이끈 주요 인물 가운데 아이칭(艾靑 1910~1996) 시인이 있습니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1933년 일본과 전투 중에 포로로 붙잡히고 맙니다. 어둡고 비좁은 감옥 안의 생활은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만이 있을 뿐이었는데요. 그때 그는 시를 쓰면서 혹독한 시절을 견뎠다고 합니다. 시를 쓰게 된 필명이 바로 '아이칭(艾靑)'입니다. 안도현 시인의 시작법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60쪽에서 아이칭은 '시 쓰는 방법'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쓰는가에 있지 않고, 당신이 어떻게 쓸 것이며, 어떻게 이 세계를 볼 것이며, 어떠한 각도에서 세계를 볼 것이며, 당신이 어떠한 태도로 이 세계를 포용할 것인가에 있다.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60쪽 中 나태주 연필화 시집 | 나태주 - 교보문고 나태주 연필화 시집 | 나태주 시인이 사랑한 시와 그림, 그리고 당신 모든 마음이 한데 엮인, 등단...
김용락 시인의 詩 '가을' 中 가을 김용락 살아가는 게 문득 낯설 때가 있다 대구 근교 팔공산 언저리 이씨네 과수원 잘 익은 사과가 가을비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다 그 곁 허물어진 봉분 위의 누런 풀들이 부활의 수신호를 어디론가 보내고 있다 살아가는 건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하는 것일까? 김용락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에 놓아둔 詩 '가을' 가을산 김용락 문득 쳐다본 가을산이 저물고 있다 상처입은 단풍잎 몇 몸에 매단 채 어둠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가을산의 섭리와는 달리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이 묘미이다 또한 이것이 불가능한 사랑을 뜨겁게 달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에 패배가 있듯이 인생에도 패배는 있는 법이다 앙상한 뼈가슴을 드러낸 채 산이 오늘 어둠속에 묻혀도 내일이면 한낮의 단풍보다 더 아름다운 별이 산 위에 뜬다 김용락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에 놓아둔 詩 '가을산' 어느 날 가지런히 날개를 펴고, 가을 햇살을 받아들이던 잠자리. 창비에서 지난 1996년 6월 펴낸 김용락 시인의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는 방황 후 진실한 내면의 목소리를 담아 시어로 옮겨 놓았습니다. 시집 속 시 하나하나를 꺼내 읽다보면, 무언가 애잔한 감정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시집 속에서 김용락 시인은 "산이 오늘 어둠속에 묻혀도 / 내일이면 한낮의 단풍보다 더 아름다운 / 별이 산 위에 뜬다"라고 희망찬 언어로 말하거나...
권경인 시인의 詩 '원근법' 中 원근법 권경인 천천히 걸어도 빠르게 닿아버리는 목적지는 싫다 허기진 밤길 오래 걸어 행복도 열정도 제 몫의 것만 제 품속에 거두며 허공에 온몸을 담그고 서 있는 나무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깊은 물은 조용히 흐르는 법이다 이미 많은 걸 깨달아 단순해진 숲에 비 내리고 까맣게 바람 분다 새들은 길을 잃지 않는다 권경인 시집 <변명은 슬프다>에 놓아둔 詩 '원근법' 요즘 도시는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는 가을, 다른 하나는 겨울을 기다리는 표정의 두 얼굴. 사랑 권경인 비 냄새가 다 비를 몰고 오진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행간에서 먼 짐승들 울음소리 들릴 때 그는 웃는다 울고 싶을 때 모퉁이마다 넘치는 씨 없는 꽃들 숨을 곳이 없구나 배는 고픈데 텅 빈 곳에서 텅 빈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막막한 것인가 권경인 시집 <변명은 슬프다>에 놓아둔 詩 '사랑' … 창비에서 펴낸 권경인 시인의 시집 속, 詩 서너 개를 꺼내 읽다가. 창비에서 지난 1998년 12월 펴낸 권경인 시인의 시집. <변명은 슬프다>에는 자연이 품은 나무와 돌, 바람과 꽃 혹은 구름 그리고 비 등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시인의 언어는 자연 그 자체의 유순함을 품어 세상을 향해 손짓을 하지만, 그 순간을 포착할 때까지 시인의 마음은 또 얼마나 많이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시집 속 시를 읽었다. 자정 무렵이었고,...
이이체 시인 시집 <인간이 버린 사랑> 20~21쪽 '인간이 버린 사랑' 中 인간이 버린 사랑 이이체 내 그림자가 아픈 날, 신은 태어났다 두번째 입맞춤이었다 모든 눈썹으로 당신의 눈을 숨긴다 서로를 사랑한 적 없는 유골들을 불덩이 속에 던져버리는 해방감 이해될 수 없어서 나는 나를 버리지 못한다 추수가 끝난 허전한 밭에서 몽유병자들은 잠의 혁명을 곱씹었다 도시로부터 낙향해 온 중늙은이들이 말했다 빛을 잃을 줄 아는 밤, 우리는 이것이 그리웠단다 이렇게 내 거짓이 아름다우니까, 당신이여 봄날처럼 미치도록 만발하는 죄책감이 육체를 점령한다 여러 사람들을 차례대로 지우는 것으로 유서를 써 내려간 후, 마음을 잃은 상징들을 건축한다 사랑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구절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일이다 말을 위해 입술들은 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공간을 벗어나 다시 공간으로, 나는 기도문처럼 전생들을 회고할 것ㅇ디ㅏ 흉터는 모두 한 편의 시 들판, 몸을 잘린 채 겨울을 기다리는 보리풀들이 느리게 춤추며 꿈을 꾼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자신의 도시를 버리고 떠나온 패배자들 어둠이 짙어질수록 나와 당신은 침묵으로 끓는다 불장난이 시작되고, 밤은 또다시 빛이라는 강박을 가져야만 하리라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더 오래 기다릴 줄 알았다 그러나 우연에 실패하는 우상들이여, 사랑은 이 저물어가는 필연의 세계에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못할 것이다 흉터는 모두 한 편의...
한강 시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72~74쪽 詩 '효에게. 2002. 겨울' 효에게. 2002. 겨울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 몸을 지나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 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오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데기를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한강 시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72~74쪽 詩 '효에게. 2002. 겨울' 페이스북 KBS 뉴스 '한강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이런뉴스 ...
김준오 <시론> 168~169쪽 '심상의 기능' 中 내겐, 언제 샀는지. 어디서 왜 샀는지 모르는 책들이 적지 않다. 어느 순간의 쓸모 혹은 유혹에 이끌려 손에 쥐었겠지만, 그 후 그렇게 산 책이 손에서 다시 펴지는 일은 드물다. 아니 드물었다. 젊은 날에 손에 쥔 것 대부분이 그러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흐르다가 쌓인 시간이 한곳에 모여 세월이란 이름을 지녔을 때. 오래전 샀던 책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 어딘가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그날의 감정'도 함께 일렁였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 잦아서, 종종 흥미롭구나 싶기도 하다. <신론> 김준오 지음_삼지원_초판 1쇄 1982년 2월 10일_제4판 38쇄 2018년 2월 12일 김준오 교수의 <시론>을 산 것은 2018년 2월 이후의 일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책을 살 때마다 포스트잇에 '샀을 때 감정'을 짧게 기록하는데. <시론>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하니 다만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시간을 복기해 보면 신춘문예 공모전에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졸작 몇 편을 보내고, 낙방한 후로 기억한다. 조각난 마음, 떨어진 아픔 등을 기댈 곳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때 자주 가던 동네 서점에서 김준오 교수의 <시론>을 샀을 것이다. "본서는 저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시론> 제4판(2002년 5월 10일 발행)을 현대 표준어 규정에 ...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헤르만 헤세는 세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경험하면서 누구보다 '사랑에 관해 고민한 작가'였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에는 그런 작가의 생각이 글로 담겨 있는데요. 헤세는 "인생은 사랑을 통해서만 의미를 얻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헌신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 의미심장해집니다."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구원인가! <클라인과 바그너>, 1919년 <헤세의 사랑> 11쪽 中 헤르만 헤세의 작품 가운데 '사랑'을 주제로 한 글 모음집 사랑 헤르만 헤세 기쁨에 겨운 내 입술은 다시금 내게 입맞춤으로 축복을 주는 그대의 입술을 만나려 하네. 나는 그대의 사랑스런 손가락을 잡고 어루만지며 내 손가락과 깎지 끼려 하네. 내 시선을 그대의 시선으로 채우고 내 머리를 그대의 머리카락 속에 깊이 파묻으려 하네. 언젠가 깨어 있는 젊은 몸짓으로 그대의 몸짓에 충실이 답하며 늘 새로운 사랑의 불꽃ㅇ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끝없이 새롭게 만들려 하네. 우리가 둘 다 완전히 만족하고 감사하며 모든 고통에도 지극히 기뻐하며 살게 될 때까지, 우리가 낮이나 밤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사랑하는 누이로서 더 바랄 나위 없이 인사할 때까지, 우리가 모든 행동을 초월하여 정화된 자로서 완전히 평화롭게 살아갈 때까지. 1913년 <헤세의 사랑> 12~13쪽 中 헤르만 헤세가 1903년 6월 21일 체...
이해인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120~121쪽 詩 '마음에 대하여' 마음에 대하여 이해인 마음 찾기 1 숨어 있기 싫어서인가? 가끔은 내 마음도 집 밖으로 외출을 한다 그가 빨리 돌아오지 않아 내내 불편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괴로웠다 2 내내 밖으로 서성이다 오랜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마음이여 고맙다 네가 가출한 동안은 단순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울면서 기도해도 대답 없던 시간들 네가 돌아와 나의 삶은 다시 기쁨이 되었다 주인인 내가 너무 무관심해서 화가 났다구? 이젠 나도 잘할게 다시 만난 기념으로 아침엔 녹차 한잔 저녁엔 포도주 한잔 할까? 이해인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120~121쪽 詩 '마음에 대하여' 이해인 시인의 詩 '마음에 대하여' 中 숨어 있기 싫어서인가? 가끔은 내 마음도 집 밖으로 외출을 한다 내내 밖으로 서성이다 오랜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마음이여 고맙다 이해인 시인의 詩 '마음에 대하여' 中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이해인 지음_열림원_초판 1쇄 2015년 2월 27일 『지독한 병마와 싸워야 하는 시인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파릇하게 피어오른 새싹을 보면서….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내게 말없이 참을성을 가르쳐주는 꽃과 나무들, 수도원 식구들, 독자들, 친지들……. 모두들 다시 소중한 선물로 받아 안으며 나는 오...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56쪽 詩 '지고 나르는 고통' 지고 나르는 고통 박노해 쓰지 않는 젊음은 지고 나르는 우울이다 돌지 않는 권력은 지고 나르는 부패이다 놓지 않는 소유는 지고 나르는 사슬이다 살지 않는 지식은 지고 나르는 어둠이다 주지 않는 사랑은 지고 나르는 고통이다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56쪽 詩 '지고 나르는 고통'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63쪽 詩 '사랑과 의무' 사랑과 의무 박노해 사랑을 하면 의무를 잊는다네 한밤의 태양처럼 때로 의무를 위해 사랑을 잊어야 하네 한낮의 별빛처럼 언제나 사랑을 위해 그 사랑 잊어야 하네 그래도 사랑하네 그래도 일을 하네 별빛처럼 태양처럼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63쪽 詩 '사랑과 의무'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82쪽 詩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박노해 알려지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밤하늘에 별은 뜨고 계절 따라 꽃은 피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일을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82쪽 詩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너의 하늘을 보아>_박노해_느린걸음_초판 1쇄 2022년 5월 13일 『아끼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차라리 내가 겪는 편이 나아.'라고 말하고...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섬 안도현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 안도현 시집 <그리운 여우>에 놓아둔 詩 '섬' © wrenmeinberg, 출처 Unsplash 사랑 안도현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안도현 시집 <그리운 여우>에 놓아둔 詩 '사랑' © chanphoto, 출처 Unsplash 삶 안도현 게는 이 세상이 질척질척해서 진흙 뻘에 산다 진흙 뻘이 늘 부드러워서 게는 등껍질이 딱딱하다 그게 붉은 투구처럼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이 바로 싸움터이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설 줄 모르고 게가 납작하게 엎드린 것은 살아 남고 싶다는 뜻이다 끝끝내 그래도 붙잡히면? 까짓것, 집게...
책을 읽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김명수 시인은 조용한 시인이다. 외모가 그렇고, 노래 또한 그렇다. 그는 화려하고 떠들썪한 삶이나 눈부신 자연보다는 응달진 고셍서 어렵게 사는 이들, 그리고 인간의 어머니이며 벗인 당과 나무와 풀에 고요한 눈길을 보낸다. <바다의 눈>은 김명수의 시세계가 보석처럼 농축된 시집이다. 시집을 덮을 무렵 그의 잔잔한 노래는 장엄한 교향시처럼 울려퍼진다. _______ 라고 시집 표지에 쓰여 있다. 김명수 시인의 시집 <바다의 눈> 간혹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는 지갑을 열 때가 있다.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하니, 현금 사용이 드물기도 하지만…. 어느 땐 지갑 속 지폐 한 장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을 사기도 한다. 3,500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시집을 한 권 사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김명수 시인의 시집은 1995년 10월 펴낸 시집인데. "초판본"이고, 발행한 시집은 여전히 1995년 가격 그대로다. 그러니 지금 서둘러야만 살 수 있는 시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집을 사야 하는 이유가 '값이 싸서'가 아니라. 시인의 시집 초판본이라는 것과 1990년대 중반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 하나하나가 참 좋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도 나처럼…. 시인의 시집 <바다의 눈>을 펴고 읽다 보면 '누군가 혹은 미안한 마음'이 들지도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