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인 시인의 詩 '원근법' 中 원근법 권경인 천천히 걸어도 빠르게 닿아버리는 목적지는 싫다 허기진 밤길 오래 걸어 행복도 열정도 제 몫의 것만 제 품속에 거두며 허공에 온몸을 담그고 서 있는 나무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깊은 물은 조용히 흐르는 법이다 이미 많은 걸 깨달아 단순해진 숲에 비 내리고 까맣게 바람 분다 새들은 길을 잃지 않는다 권경인 시집 <변명은 슬프다>에 놓아둔 詩 '원근법' 요즘 도시는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는 가을, 다른 하나는 겨울을 기다리는 표정의 두 얼굴. 사랑 권경인 비 냄새가 다 비를 몰고 오진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행간에서 먼 짐승들 울음소리 들릴 때 그는 웃는다 울고 싶을 때 모퉁이마다 넘치는 씨 없는 꽃들 숨을 곳이 없구나 배는 고픈데 텅 빈 곳에서 텅 빈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얼마나 막막한 것인가 권경인 시집 <변명은 슬프다>에 놓아둔 詩 '사랑' … 창비에서 펴낸 권경인 시인의 시집 속, 詩 서너 개를 꺼내 읽다가. 창비에서 지난 1998년 12월 펴낸 권경인 시인의 시집. <변명은 슬프다>에는 자연이 품은 나무와 돌, 바람과 꽃 혹은 구름 그리고 비 등에 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시인의 언어는 자연 그 자체의 유순함을 품어 세상을 향해 손짓을 하지만, 그 순간을 포착할 때까지 시인의 마음은 또 얼마나 많이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시집 속 시를 읽었다. 자정 무렵이었고,...
이이체 시인 시집 <인간이 버린 사랑> 20~21쪽 '인간이 버린 사랑' 中 인간이 버린 사랑 이이체 내 그림자가 아픈 날, 신은 태어났다 두번째 입맞춤이었다 모든 눈썹으로 당신의 눈을 숨긴다 서로를 사랑한 적 없는 유골들을 불덩이 속에 던져버리는 해방감 이해될 수 없어서 나는 나를 버리지 못한다 추수가 끝난 허전한 밭에서 몽유병자들은 잠의 혁명을 곱씹었다 도시로부터 낙향해 온 중늙은이들이 말했다 빛을 잃을 줄 아는 밤, 우리는 이것이 그리웠단다 이렇게 내 거짓이 아름다우니까, 당신이여 봄날처럼 미치도록 만발하는 죄책감이 육체를 점령한다 여러 사람들을 차례대로 지우는 것으로 유서를 써 내려간 후, 마음을 잃은 상징들을 건축한다 사랑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구절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일이다 말을 위해 입술들은 늘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공간을 벗어나 다시 공간으로, 나는 기도문처럼 전생들을 회고할 것ㅇ디ㅏ 흉터는 모두 한 편의 시 들판, 몸을 잘린 채 겨울을 기다리는 보리풀들이 느리게 춤추며 꿈을 꾼다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자신의 도시를 버리고 떠나온 패배자들 어둠이 짙어질수록 나와 당신은 침묵으로 끓는다 불장난이 시작되고, 밤은 또다시 빛이라는 강박을 가져야만 하리라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더 오래 기다릴 줄 알았다 그러나 우연에 실패하는 우상들이여, 사랑은 이 저물어가는 필연의 세계에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못할 것이다 흉터는 모두 한 편의...
한강 시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72~74쪽 詩 '효에게. 2002. 겨울' 효에게. 2002. 겨울 한강 바다가 나한테 오지 않았어. 겁먹은 얼굴로 아이가 말했다 밀려오길래, 먼 데서부터 밀려오길래 우리 몸을 지나 계속 차오르기만 할 줄 알았나 보다 바다가 너한테 오지 않았니 하지만 다시 밀려들기 시작할 땐 다시 끝없을 것처럼 느껴지겠지 내 다리를 끌어안고 뒤로 숨겠지 마치 내가 그 어떤 것, 바다로부터조차 널 지켜줄 수 있는 것처럼 기침이 깊어 먹은 것을 토해 내며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엄마를 부르던 것처럼 마치 나에게 그걸 멈춰줄 힘이 있는 듯이 하지만 곧 너도 알게 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시간과 成長, 집요하게 사라지고 새로 태오나는 것들 앞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함께 품었던 시절의 은밀함을 처음부터 모래로 지은 이 몸에 새겨두는 일뿐인 걸 괜찮아 아직 바다는 오지 않으니까 우리를 쓸어 가기 전까지 우린 이렇게 나란히 서 있을 테니까 흰 돌과 조개껍데기를 더 주울 테니까 파도에 젖은 신발을 말릴 테니까 까끌거리는 모래를 털며 때로는 주저앉아 더러운 손으로 눈을 훔치기도 하며 한강 시인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72~74쪽 詩 '효에게. 2002. 겨울' 페이스북 KBS 뉴스 '한강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이런뉴스 ...
김준오 <시론> 168~169쪽 '심상의 기능' 中 내겐, 언제 샀는지. 어디서 왜 샀는지 모르는 책들이 적지 않다. 어느 순간의 쓸모 혹은 유혹에 이끌려 손에 쥐었겠지만, 그 후 그렇게 산 책이 손에서 다시 펴지는 일은 드물다. 아니 드물었다. 젊은 날에 손에 쥔 것 대부분이 그러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흐르다가 쌓인 시간이 한곳에 모여 세월이란 이름을 지녔을 때. 오래전 샀던 책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 어딘가에 잔뜩 웅크리고 있던 '그날의 감정'도 함께 일렁였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것이 잦아서, 종종 흥미롭구나 싶기도 하다. <신론> 김준오 지음_삼지원_초판 1쇄 1982년 2월 10일_제4판 38쇄 2018년 2월 12일 김준오 교수의 <시론>을 산 것은 2018년 2월 이후의 일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책을 살 때마다 포스트잇에 '샀을 때 감정'을 짧게 기록하는데. <시론>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그러하니 다만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시간을 복기해 보면 신춘문예 공모전에 작품이라고 할 수 없는 졸작 몇 편을 보내고, 낙방한 후로 기억한다. 조각난 마음, 떨어진 아픔 등을 기댈 곳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때 자주 가던 동네 서점에서 김준오 교수의 <시론>을 샀을 것이다. "본서는 저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시론> 제4판(2002년 5월 10일 발행)을 현대 표준어 규정에 ...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헤르만 헤세는 세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을 경험하면서 누구보다 '사랑에 관해 고민한 작가'였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에는 그런 작가의 생각이 글로 담겨 있는데요. 헤세는 "인생은 사랑을 통해서만 의미를 얻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헌신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 의미심장해집니다."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우리에게 큰 구원인가! <클라인과 바그너>, 1919년 <헤세의 사랑> 11쪽 中 헤르만 헤세의 작품 가운데 '사랑'을 주제로 한 글 모음집 사랑 헤르만 헤세 기쁨에 겨운 내 입술은 다시금 내게 입맞춤으로 축복을 주는 그대의 입술을 만나려 하네. 나는 그대의 사랑스런 손가락을 잡고 어루만지며 내 손가락과 깎지 끼려 하네. 내 시선을 그대의 시선으로 채우고 내 머리를 그대의 머리카락 속에 깊이 파묻으려 하네. 언젠가 깨어 있는 젊은 몸짓으로 그대의 몸짓에 충실이 답하며 늘 새로운 사랑의 불꽃ㅇ로 그대의 아름다움을 끝없이 새롭게 만들려 하네. 우리가 둘 다 완전히 만족하고 감사하며 모든 고통에도 지극히 기뻐하며 살게 될 때까지, 우리가 낮이나 밤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사랑하는 누이로서 더 바랄 나위 없이 인사할 때까지, 우리가 모든 행동을 초월하여 정화된 자로서 완전히 평화롭게 살아갈 때까지. 1913년 <헤세의 사랑> 12~13쪽 中 헤르만 헤세가 1903년 6월 21일 체...
이해인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120~121쪽 詩 '마음에 대하여' 마음에 대하여 이해인 마음 찾기 1 숨어 있기 싫어서인가? 가끔은 내 마음도 집 밖으로 외출을 한다 그가 빨리 돌아오지 않아 내내 불편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괴로웠다 2 내내 밖으로 서성이다 오랜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마음이여 고맙다 네가 가출한 동안은 단순한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울면서 기도해도 대답 없던 시간들 네가 돌아와 나의 삶은 다시 기쁨이 되었다 주인인 내가 너무 무관심해서 화가 났다구? 이젠 나도 잘할게 다시 만난 기념으로 아침엔 녹차 한잔 저녁엔 포도주 한잔 할까? 이해인 시집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120~121쪽 詩 '마음에 대하여' 이해인 시인의 詩 '마음에 대하여' 中 숨어 있기 싫어서인가? 가끔은 내 마음도 집 밖으로 외출을 한다 내내 밖으로 서성이다 오랜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마음이여 고맙다 이해인 시인의 詩 '마음에 대하여' 中 <서로 사랑하면 언제라도 봄> 이해인 지음_열림원_초판 1쇄 2015년 2월 27일 『지독한 병마와 싸워야 하는 시인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파릇하게 피어오른 새싹을 보면서….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내게 말없이 참을성을 가르쳐주는 꽃과 나무들, 수도원 식구들, 독자들, 친지들……. 모두들 다시 소중한 선물로 받아 안으며 나는 오...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56쪽 詩 '지고 나르는 고통' 지고 나르는 고통 박노해 쓰지 않는 젊음은 지고 나르는 우울이다 돌지 않는 권력은 지고 나르는 부패이다 놓지 않는 소유는 지고 나르는 사슬이다 살지 않는 지식은 지고 나르는 어둠이다 주지 않는 사랑은 지고 나르는 고통이다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56쪽 詩 '지고 나르는 고통'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63쪽 詩 '사랑과 의무' 사랑과 의무 박노해 사랑을 하면 의무를 잊는다네 한밤의 태양처럼 때로 의무를 위해 사랑을 잊어야 하네 한낮의 별빛처럼 언제나 사랑을 위해 그 사랑 잊어야 하네 그래도 사랑하네 그래도 일을 하네 별빛처럼 태양처럼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63쪽 詩 '사랑과 의무'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82쪽 詩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박노해 알려지지 않았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는다고 위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밤하늘에 별은 뜨고 계절 따라 꽃은 피고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일을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길을 간다 박노해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82쪽 詩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너의 하늘을 보아>_박노해_느린걸음_초판 1쇄 2022년 5월 13일 『아끼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건, '차라리 내가 겪는 편이 나아.'라고 말하고...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섬 안도현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 안도현 시집 <그리운 여우>에 놓아둔 詩 '섬' © wrenmeinberg, 출처 Unsplash 사랑 안도현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안도현 시집 <그리운 여우>에 놓아둔 詩 '사랑' © chanphoto, 출처 Unsplash 삶 안도현 게는 이 세상이 질척질척해서 진흙 뻘에 산다 진흙 뻘이 늘 부드러워서 게는 등껍질이 딱딱하다 그게 붉은 투구처럼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이 바로 싸움터이기 때문이다 뒤로 물러설 줄 모르고 게가 납작하게 엎드린 것은 살아 남고 싶다는 뜻이다 끝끝내 그래도 붙잡히면? 까짓것, 집게...
책을 읽다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김명수 시인은 조용한 시인이다. 외모가 그렇고, 노래 또한 그렇다. 그는 화려하고 떠들썪한 삶이나 눈부신 자연보다는 응달진 고셍서 어렵게 사는 이들, 그리고 인간의 어머니이며 벗인 당과 나무와 풀에 고요한 눈길을 보낸다. <바다의 눈>은 김명수의 시세계가 보석처럼 농축된 시집이다. 시집을 덮을 무렵 그의 잔잔한 노래는 장엄한 교향시처럼 울려퍼진다. _______ 라고 시집 표지에 쓰여 있다. 김명수 시인의 시집 <바다의 눈> 간혹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는 지갑을 열 때가 있다. 신용카드를 주로 사용하니, 현금 사용이 드물기도 하지만…. 어느 땐 지갑 속 지폐 한 장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을 사기도 한다. 3,500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나는 시집을 한 권 사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김명수 시인의 시집은 1995년 10월 펴낸 시집인데. "초판본"이고, 발행한 시집은 여전히 1995년 가격 그대로다. 그러니 지금 서둘러야만 살 수 있는 시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집을 사야 하는 이유가 '값이 싸서'가 아니라. 시인의 시집 초판본이라는 것과 1990년대 중반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시집 속에 들어 있는 시, 하나하나가 참 좋기 때문이다. 아마, 당신도 나처럼…. 시인의 시집 <바다의 눈>을 펴고 읽다 보면 '누군가 혹은 미안한 마음'이 들지도 모...
정호승 시집 <당신을 찾아서> 41쪽 詩 '모란을 위하여' 모란을 위하여 정호승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피어났구나 아직 피어나지 않았는데 아름답구나 아직 아름답지 않은데 향기롭구나 아직 향기롭지 않은데 먼 데서 나비떼가 날아와 꽃이 지는구나 아직 봄이 지나지 않았는데 온 천지에 기쁨의 슬픔이 찬란하구나 정호승 시집 <당신을 찾아서> 41쪽 詩 '모란을 위하여' 정호승 시집 <당신을 찾아서> 78쪽 詩 '꽃이 시드는 동안' 꽃이 시드는 동안 정호승 꽃이 시드는 동안 밥만 먹었어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꽃이 시드는 동안 돈만 벌었어요 번 돈을 가지고 은행으로 가서 그치지 않는 비가 그치길 기다리며 오늘의 사랑을 내일의 사랑으로 미루었어요 꽃이 시든 까닭을 문책하지는 마세요 이제 뼈만 남은 꽃이 곧 돌아가시겠지요 꽃이 돌아가시고 겨우내 내가 우는 동안 기다리지 않아도 당신만은 부디 봄이 되어주세요 정호승 시집 <당신을 찾아서> 78쪽 詩 '꽃이 시드는 동안' 정호승 시인의 시집 <당신을 찾아서> 시인의 말을 읽다가, 시인과 창비라는 출판사가 '시집 인연'을 맺고 이어온 시간의 길이를 상상했습니다. 정호승 시인이 창비에서 첫 시집을 낸 건, 이십대.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스무살 무렵 첫 시집을 낸 시인은 머리에 흰꽃을 얹고 살아가는 나이에 이르렀고, 창비도 성장을 하면서 지금의 모습로 자라났겠지요. '함께하는 일' 그런 일 가운데 '시와 출판...
푸쉬킨 서정시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26쪽 詩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마라, 성내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옴을 믿어라.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 지나간 것은 도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1825] * 이 시는 미아일로프스코예에 이웃한 트리고르스코에 마을의 여지주 프라스 코비야 오시포바의 딸 예프프라크시야 불리프의 앨범에 적어넣어졌다. 푸쉬킨 서정시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126쪽 詩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로 세르게예비치 푸쉬킨(1799~1837) 알렉산드로 세르게예비치 푸쉬킨(1799~1837) 은 러시아의 국민시인으로 불리며, 세월히 흘러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시인이다. 1799년 6월 6일 6백년 전통을 지닌 귀족 혈통으로 태어났고, 청소년 시절엔 리쎄이에서 공부했다. 그 즈음 자유주의를 갈망하기 시작했고, 야만적 농노제로 신음하던 러시아 민중의 삶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1817년 리쎼이를 졸업하고 외무부 서기로 일하던 때, 진보적 문학 모임과 혁명적 인사들과 교류하였다. 그 무렵부터 차르 체제의 러시아 현실을 풍자한 시를 발표하였고, 그것 때문에 1820년 남러시아로 유형 길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후 1833년 가을 페테...
주파수는 사랑을 실어 나른다. 라디오는 사랑의 둥지처럼 보인다. 주파수 유미희 - 감기 들겠다. 비 오는 날 엄마의 주파수는 우산 없이 학교에 간 나입니다. - 춥게 지내시지 않을까? 눈보라 치는 날 아빠의 주파수는 고향 집에 혼자 계신 할머니입니다. 유미희 시인 동시집 <짝꿍이 다 봤대요>에 놓아둔 詩 '주파수' © liane, 출처 Unsplash 선물 유미희 외숙모가 낳은 아기는 처음으로 외삼촌에게는 아빠라는 이름을 엄마에게는 고모라는 이름을 나에게는 누나라는 이름을 새로 주었다. 이 세상 어느 가게에서도 살 수 없는 것을 선물로 가져 왔다. 유미희 시인 동시집 <짝꿍이 다 봤대요>에 놓아둔 詩 '선물' © clemono, 출처 Unsplash 부드럽고 조용한 것이 유미희 빗방울이 두두두 툭툭 열무밭 참깨밭을 밟아 놓았다. 바람이 휘이이이 풋살구 풋복숭아의 볼을 쳤다. 햇살이 조록조록 논물 한 방울까지 마셔 버렸다. 부드럽고 조용한 것이 가끔 화를 낼 때 더 무섭다. 유미희 시인 동시집 <짝꿍이 다 봤대요>에 놓아둔 詩 '부드럽고 조용한 것이' <짝꿍이 다 봤대요> 유미희 지음_이광익 그림_사계절_초판 1쇄 2007년 11월 30일 사계절에서 지난 2007년 11월 펴낸 시집. 유미희 시인의 <짝꿍이 다 봤대요>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우수 문학으로 뽑힌 동시집이다. 작고 소소한 것들 안에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는' 무언가...
나태주 시인의 詩 '8월' 中 8월 나태주 태양으로부터 무차별 쏟아지는 열정의 포화, 프러포즈 이 뜨거움 없으면 어찌 여름이 여름일 수 있겠니? 나무나 곡식이며 풀들은 어찌 일 년을 견딜 것이며 사람 또한 그러하겠니? 피서 혹서다 그럴 여유도 없다 태양의 선물이 고마운 것이다. 나태주 시인 시집 <너에게도 안녕이>에 놓아둔 詩 '8월' 여름을 여름답게 하는 건, 태양도 그 무엇도 아닌…. 여름 그 자체라는 것. 그러하니 나를 나답게 하는 것 또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스스로'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詩 한 편을 놓아두고, 이 여름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끼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의 모습도 아닌, 바로 당신' 이었다는 것에, 새삼 고개 숙여 고마운 마음이 드는군요. 아끼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 모습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더군요. 친구도, 후배도, 동료도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 모두 그런 사람들입니다. 새삼 고맙구나 싶어지는 날, 여름은 그렇게 깊어갑니다. © y2kkim, 출처 Unsplash 앉아서 보는 바다 나태주 앉아서 바다를 볼까? 서서 바다를 볼까? 앉아서 보는 바다는 키가 작고 서서 보는 바다는 키가 크다 아니다 서서 보는 바다는 성난 바다이고 앉아서 보는 바다는 울고 있는 바다이다 바다야 바다야 울지 말아라 내가 옆에 있잖니 바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얌전해지기 시작하는 바다 파...
최지인 시인의 詩 '숨' 中 숨 최지인 나아진다는 게 뭘까 여러날 동안 여러달 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우리를 주저하게 하는 것들 면담이 끝났다 그만둘 날이 정해졌다 사무실 이곳저곳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지진이 났대 모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우리 곁을 맴도는 바람 잠시 머문 햇살 이사를 앞둔 사람 네가 없는 여기 내가 떠난 건 네가 아이냐 아프지 말자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알 수 없는 마음은 그냥 두자 * 누군가 말했다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도 모른다고 그런 자유는 없다 우리 시대 지식인들은 모두 인민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무엇에 공모하고 있는가 이 구미 자본주의에 이 신자유주의에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다 분명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둔 것이다 꽁꽁 언 고기가 녹고 있다 * 아름다운 것은 아프고 아픈 것은 아름다워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이 밤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가만히 가만히 최지인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에 놓아둔 詩 '숨' © mariaprl, 출처 Unsplash 겨울의 사랑 최지인 하늘 위 하얀 구름 비행기 아래 수평선 희미하고 눈부시다 높은 산을 매일 보고 사는 사람에겐 짜증 같은 것도 사소해질 것 같다 눈이 녹지 않은 산 끄트머리 넌 두통과 근육통에 시달리고 약을 두알 더 삼켰지만 네가 아플 때 난 어떻게 해야 하지...
필사하기 좋은 책. 이창훈 시인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추천 조르바* 이창훈 매일 새로 뜨는 태양 나는 날마다 태어난다 날마다 태어나 만난 것은 당신이 아닌 오늘 바로 지금 금지를 넘어서려는 사람은 지금을 사랑하다 살 뿐 나는 다른 날을 만난 적이 없다 *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이창훈 시인 시집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 110쪽 詩 '조르바' 필사노트를 꺼내고, 詩를 옮긴다. 만년필과 종이가 만나, 빈 공간에 새로운 무언가 새겨진다. 詩를 옮기다 보면, 時를 옮겨 놓는 듯할 때가 있다. 시나 좋은 문장을 옮기는 동안 시간은 허망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옮겨지는 종이 위에 함께 새겨지는 것이라 여긴다. 마음의 분란이나, 깊은 생각 뒤에 찾아오는 상념이나,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마음이 들뜰 때면…. 필사노트를 꺼내 문장을 옮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평온이 찾아온다. 필사하기 좋은 책으로 이창훈 시인의 시집을 소개한다. <너 없는 봄날, 영원한 꽃이 되고 싶다>를 필사하다 보면, 詩가 내게 고요하게 물드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훈 시인의 詩 '조르바' 中 금지를 넘어서려는 사람은 지금을 사랑하다 살 뿐 나는 다른 날을 만난 적이 없다 이창훈 시인의 詩 '조르바' 中 동국대학교에서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로 일하는 조서희 문학평론가는 이창훈...
김준현 시집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 16쪽 詩 '내 생각' 내 생각 김준현 편지 봉투 속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종이를 넣었다 안녕도 없고 잘 지내도 없는 편지 한 장 받는 사람의 생각은 얼마나 넓어질까? 그 생각 속에서 밤새 눈이 쌓인 듯 새하얀 너의 생각 속에 조심조심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김준현 시집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 16쪽 詩 '내 생각' "빗방울처럼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비닐우산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그 예민한 피부가 떠오를 때가 있다. 비가 오는 날, 빗방울처럼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 비닐우산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으며 행복했던 때가 있다. 빗 소리가 끊임없이 세상을 건드리는 그때 그 느낌이다. 그 느낌을 사랑한다.』 _ 시집 116~117쪽 '시인의 말' 中 김준현 시인의 시집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 116~117쪽에 놓아둔 '시인의 말'은 읽을 때마다, 나의 생활과 닮은 구석이 있어서 더 친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집에 있는 여러 개 우산 가운데 아끼는 건 비닐우산과 비슷한 투명우산이란 것. 읽었던 책을 또 읽으며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등이다. 무엇보다 "영혼과 이어폰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시오."와 같은 주제를 놓아두고, 가까운 벗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그 벗은 지금 먼 거리에...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55쪽 詩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풀이기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55쪽 詩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시집베스트셀러 박준 시인 시집 뒤쪽에서, 허수경 시인은 "어떤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며 시인은 시를 쓰네"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써 놓았다. 『세계는 언제나 불편한 것이었다. "뻔히 저기 있는 것을 알고 있으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세계에 살고 있는 고통"이라는 김현 선생의 일기의 한 구절은 어젯밤에 꾼 악몽처럼 생생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농담스럽게 이 세계를 통과하기 바랐다. 농담은 우리의 ...
최영숙 시집 <골목 하나를 사이로> 130~131쪽 詩 '라디오와 흰 오리' 라디오와 흰 오리 최영숙 잡음 나오는 라디오에 손을 갖다 대면 소리가 깨끗해진다 몸이 잡음을 흡수했거나 허공을 떠도는 전파와 교신했다는 증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확실한 물증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는 현실 현실과 과거의 접점 과거, 하면 왜 나는 찬 마룻바닥에 엎디어 읍할 일이 이렇게도 많은가 착하고 순한 말씀 하나 공증을 타고 내려와 둥그렇게 환해지는 자리 아무 할말이 없어지는 빈 터 하나 간직하는 일이 이렇게도 어려운가 몸 속에는 언제나 이리저리 부딪는 소리가 잠든 순간에도 꿈 속에서 형상을 만들고 내 소리에 내가 놀라 잠 깨는 한밤중 오, 하느님 나는 가짜였어요, 중얼거린다면 서른여섯 세월을 어디서 부정해야 하는가 잡음 나는 라디오 그렇게 닝닝거릴 때 세상과 거래할 아무것도 없으므로 단지 그리고 기다리는 일이 전부, 나의 모두였을 뿐 그때...... 그날...... 맑은 물살에 고요히 발 담그고 있던 흰 오리 한마리는 어디로 날아간 것일까 최영숙 시집 <골목 하나를 사이로>에 놓아둔 詩 '라디오와 흰 오리' 최영숙 시인의 詩 '라디오와 흰 오리' 中 골목 하나를 사이로 | 최영숙 - 교보문고 골목 하나를 사이로 | 패기만만한 상상력에 거리낌없이 활달한 어법이 주는 자유로움과 시와 사진, 그림과 꼴라주를 통한 파격적이고 특이한 매력으로 넘치는 시집. 여...
나태주 시집 <모두가 네 탓> 46쪽 詩 '11월' 11월 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태주 시집 <모두가 네 탓> 46쪽 詩 '11월' © thesollers, 출처 Unsplash 개양귀비 나태주 생각은 언제나 빠르고 각성은 언제나 느려 그렇게 하루나 이틀 가슴에 핏물이 고여 흔들리는 마음 자주 너에게 들키고 너에게로 향하는 눈빛 자주 사람들한테도 들킨다. 나태주 시집 <모두가 네 탓> 84쪽 詩 '개양귀비' 나태주 시집 <모두가 네 탓> 110쪽 詩 '그리움·3' 그리움·3 나태주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나태주 시집 <모두가 네 탓> 110쪽 詩 '그리움·3' 나태주시인 & 이종석 배우 <모두가 네 탓> 시집추천 역대 베스트셀러 도서추천 '풀꽃 시로 이어진 인연' 북리뷰 _ 친구 연인 책 선물하기 좋은 책추천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아 이종석 씨와 두 차례 만난 일이 있다. 서울에서 한 차례, 공주에서 한 차례. ... blog.naver.com ▲ 나태주 시인과 이종석 배우가 함께 펴낸 시집. <모...
정재찬 작가 <시를 잊은 그대에게> 109쪽 中 즐거운 편지 황동규 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Ⅱ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정재찬 작가 <시를 잊은 그대에게> 109쪽 '황동규, 즐거운 편지' 中 <시를 잊은 그대에게> 차례에 있는 '즐거운 편지' 세상 모든 詩는, 그 시를 처음 읽는 '독자로부터 다시 태어난다'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가 감독의 작품이듯,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작품은 작가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만들어진 '세계'는 다른 이와 마주하면서 '확장' 됩니다. 여기서 어떤 인연은 특별함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황동규 시인의 詩 '즐거운 편지'도 그런 인연에 의해서 널리 알려졌으니까요. 스무 살 청년의 시가 '지상紙上에서 지상地上'으로 확장된 건, 바로 미당 서정주 시인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재찬 작가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