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 필요한 시간에 꺼내 읽는 소로의 <월든> 일리야 레핀이라는 화가는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회화의 거장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민중의 삶을 예리한 사색과 관조를 바탕으로 그렸으며, 특히 톨스토이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1891년 여름 어느 날 레핀은 톨스토이와 그의 가족을 스케치했다. 레핀의 회고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산책하기를 즐겼고, 거의 매일 아침 숲으로 산책을 나갔다. 크고 화려한 숲이 아닌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산책하는 동안 톨스토이는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작 <월든>을 읽을 때면, 항상 톨스토이가 함께 생각난다. <월든>은 톨스토이가 극찬한 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로가 추구한 고독과 자유의 삶을 동경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톨스토이는 소로와 월든의 삶을 동경했다. 이른 아침 호수 공원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기온의 변덕이 심해서, 봄꽃들의 개화 시기가 뒤죽박죽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봄은, 신기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산책 후 서가에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꺼내 10번째 디지털 필사를 한다. <월든·시민 불복종> 88~89쪽 中 『일정한 부류의 의심 많은 사람이 있어 때때로 내게 이런 질을 해온다. 채식만 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문제의 핵심을 일거에 건드리고 싶어(그 핵심은 신념이니까) 이런 대답을 즐겨 한다....
톨스토이가 곁에 놓아두고 읽은 책.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평화로운 때 보통의 점심 식사에서 옥수수를 여러 개 충분히 삶아 소금을 쳐 먹으면 되었지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월든·시민 불복종> 85쪽 中 대안적 삶을 추구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의 사상가이면서 작가로 활동했고, 월든 호수가에 집을 짓고 <월든>이란 책을 썼습니다.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자연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소로의 <월든>을 종종 펴고 읽습니다. 간혹 그의 삶 전체를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채소 가게에서 옥수수 몇 개를 사 와서 잘 삶은 다음 소금을 톡톡 쳐서 먹는 정도는 할 수 있으니. 소로의 삶과 제 일상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소로가 추구한 '삶'을 그의 책 <월든> 속에서 밑줄 그으면서 옮기기도 합니다. <월든·시민 불복종> 86쪽 中 사람은 어떤 동물보다 기후와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이다. 나는 빵에 효모 대신 탄산소다나 산이나 알칼리도 집어넣지 않았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농업 저술가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의 처방에 따라 빵을 만들었다. 그 처방은 이러하다. "이런 식으로 반죽된 빵을 만들어라. 두 손을 잘 씻고 반죽 그릇을 대령하라. 밀가루를 그릇에 집어넣고 물을 천천히 부은 후 철저하게 반죽하라. 잘 반죽했으면 빵의 형체를 만든 후에 뚜껑을 닫고 구워라." 뚜껑은 빵 굽는 주전자 ...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시간들> 32~33쪽 中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사상을 품거나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다. 이는 지혜를 너무나 사랑하여 그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담대하고, 믿음이 있는 삶을.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시간들> 32쪽 中 또한 삶의 문제들을 푸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시간들> 33쪽 中 그래픽노블로 만나는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순간들> 1846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숲 호숫가에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그는 "내가 월든 호수로 온 목적은 구두쇠로 살고자 하는 것도, 많은 비용을 쓰며 살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장애물이 적은 환경에서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하며, 삶을 정직하게 꾸리면서 목표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지요. 삶을 정직하게 꾸리면서 목표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시간들> 41쪽 中 당신의 삶이 아무리 초라해도, 그 삶을 마주하고 살아 보라. 단순하고 현명하게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자기 삶을 건사하는 일은 고난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것을, 나는 신념과 경험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시간들> 41쪽 中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숲에서 최소한의 경제생활을 이끌면서, 자기...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순간들>_헨리 데이비드 소로 원저_존 포슬리노 글 그림_강나은 옮김_RHK_초판 1쇄 2022년 10월 19일 이 세상에는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이 살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주의 깊게 자신을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주변 사람들과 발걸음을 맞추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의 귓가에는 다른 박자가 들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에게 들리는 음악에 맞춰 발 디디도록 내버려 두라… 그 박자가 어떻건, 얼마나 멀리서 들려오건.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순간들> 42~44쪽 中 <월든에서 보낸 눈부신 순간들> 9쪽 中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왜?'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고향집으로 돌아왔을까요? 그곳에서 헨리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고, 아버지의 연필 공장에서 성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요. 체벌에 반대해서 학교는 그만두었고, 사업 성과를 냈지만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헨리는 부의 기준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그 무언가를 갈망했기 떄문입니다. 그러다가 스승 랠프 왈도 에머슨처럼 살고 싶었고, 1837년 10월 22일부터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하죠. 어느 날 헨리는 월든 숲으로 들어갑니다. 호숫가 근처에 작은 통나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죠. 그곳에서 그는 최소한의 먹거리는 직접 재배했고...
자연을 예찬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인간 독립 선언문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지만, 안정된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가 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밥벌이를 삼지 않고, 측량이나 목수 혹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는 동안 소로는 1845년 월든 호숫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작은 통나무집을 짓고, 땅을 일구면서 <월든>을 쓴다. 어떤 날씨에서든, 낮이나 밤이나 어떤 시간이든 나는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를 막대기에 새겨놓으려 했다. 두 영원, 즉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라는 지점을 굳건히 딛고 서서, 충실히 원칙을 따라 가려 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28쪽 中 1916년 7월 3일 아사벳 강에 비친 낙조를 바라보면서 쓴 소로의 이 문장을 좋아한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이면서 사상가인 소로는 '자기 삶의 가치를 자주적 인간 독립' 즉, 자유에 두었다.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월든>에 담아 놓은 소로의 생각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동, 자연과 함께 깨어 있기, 실천을 통한 교육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와 자주적 삶이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시민 불복종> 84쪽 中 나는 2년간의 체험에서 생필품 식량을 얻는 데에는 힘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이런 외딴 장소에서도 그러하다. 사람은 간단한 식단을...
1845년 봄, 소로는 월든 호수 옆 숲속에서 2년 2개월 동안 생활했다. 그러는 동안 소로는 <월든>을 썼다. 말콤 글래드웰이 쓴 경영서 <블링크>를 읽고 있다. 17년 전 첫 출간 이후 저자는 '새로운 정보나 경영 전략, 현 재라는 시점의 가치 등'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블링크>는 "세상을 꿰뚫어보는 첫 2초에 주목하라."라고 역설한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말의 핵심은 '2초'라는 숫자가 아니다. 어떤 선택의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행간의 의미'에 있다. 그는 "순간의 선택이 장고 끝의 선택보다 더 나을 수 있다. 한눈에 내린 결정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보다 더 탁월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말콤 글래드웰이 경험한 세계와 그가 우리에게 말하려고 하는 '세상을 꿰뚫어보는 첫 2초'를 잠시 곁에 놓아둔다. 그러고는 1845년 봄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월든 호수 옆 숲속으로 들어간 소로를 떠올렸다. 해가 아직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 소로가 2년 2개월 동안 노동과 사색을 통해 완성한 <월든>을 디지털로 필사한다. 여섯 번째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신민 불복종> 77쪽 中 이러한 견적을 낼 당시, 내가 먹었거나 손에 가진 농산물 가치는 4달러 50센트 정도였다. 내가 가꾸지 않았지만 풀의 가치를 생각하면 이 액수만으로도 흑자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일상의 회복' 두 단어가 만들어 놓은 촉감을 느끼는 오전, 어느 날__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걷는 기분이란, '바로 이런 느낌이지'라며 이른 아침 공원을 거닐었다. 5월의 첫날은 일요일이라서. '노동자의 날' 하루를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은 월요일을 '휴가'로 대체했고, 그런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깔깔거린다. 돗자리가 집 밖으로 나오고, 이젠 밖에서도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걸. 저 아이들도 알고 있는지. 웃음소리가 공원 가득하다. "들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한 조각"을 왼손에 쥔 채 조금 더 거닐었다. 오른손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월든>이 들려 있다. 묻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냐. 기억처럼 꿈은 언제든 다시 피어나지. 오래전 어디선가 읽은 문장 한 줄.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결국엔 되찾고 말았구나 싶은 보통의 나날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잊지 않는 한, 다시 피는 꽃처럼 우리의 꿈도 피어나고야 만다. 솔직히 고백하면… 오전 5시 20분, 간혹 새벽에 일어나 호수공원을 산책하곤 했는데. 사람 없는 시간대에선 마스크를 벗고 걸었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언제, 마스크 없이 산책하는 날이 올까?'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미라클모닝이 '미라클데이'로 바뀐 첫날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좀 들뜨기도 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시민 불복종> 61쪽 中 나는 종다리, 딱...
발길 닿는 가까운 곳에,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아무래도 다행스러운 일. 대부분 사람이 개선된 시설을 갖춘 집을 소유했거나 임차했다고 하자. 문명은 우리 주택을 개선했지만 그 안에 들어가 살 사람들도 그에 맞추어 향상되지는 않았다. 궁전을 만들었지만 귀족과 왕들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문명인이 추구하는 바가 미개인보다 더 가치 있지 않다면, 그리고 그가 단지 생필품과 편의품을 얻는 데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면, 그가 미개인보다 더 좋은 십에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시민 불복종> 51쪽 中 수십억 대를 호가하는 아파트 주민들이 "택배 기사들은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라."는 지침을 붙여놓았고, "주민의 안전을 위해 차량은 단지 밖에 주차한 뒤 카트를 이용해 배송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는 신속배송을 할 수 없다며 택배사가 배송집단 거부를 한다는 기사를 봤다. 다른 지면의 경제 IT 기사는 스마트한 시스템으로 주거 공간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기사가 대립각을 세운다. 서너 가지 뉴스를 읽다가, 인터넷 창을 닫았다. 한 가지 질문이 그 뒤를 따라왔다. "생활 환경은 발전했지만, 우리의 생활 인식 수준도 함께 향상되었을까?"라는 물음표였다. "궁전을 만들었지만 귀족과 왕들을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았다."라는 책 속 문장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산책을 나섰다. 그렇게 잠시 ...
어느 한철 푸르게 빛나던 것 모두는, 그렇게 다시 혼자의 시간을 견뎌 다시 푸른 봄을 맞지 않을까? 산책하다 보면 공원의 한해 살이가 인간의 삶과 비슷하다고 여길 때가 있습니다. 봄부터 여름 지나,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의 한살이를 통해 공원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혁명처럼 보이는 봄의 그 찬란한 현장이나, 싱그럽도록 푸른 여름 등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공원도 이 계절을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집니다. 간혹 그런 풍경 아래 놓이면 '고독과 외로움'에 관해서 잠시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20세기 철학자 폴 티리히는 '고독과 외로움'에 관해 재밌는 정의를 내립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외로움'은 '홀로 있는 괴로움'을 표현하는 말이며, '고독'은 '홀로 있는 영광'이라고 표현합니다. '홀로' 있지만 고독과 외로움의 질감은 극과 극에 놓여 있곤 합니다. 우리가 좋은 하는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에도 '고독과 외로움'에 관한 글이 담겨 있습니다. 시인이 좋아하는 선배와 대화를 나누다가, 고독과 외로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른 감정 같아, 외로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것일 텐데, 예를 들면 타인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드는 그 감정이 외로움일 거야. 반면에 고독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 같아. 내가 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고독해지지. 누구를...
나무와 나무 '사이가 만들어 놓은 그 틈'으로 반짝 빛나는 것, 마치 행간과 행간 사이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그것'처럼. 잘 알지 못하지만, 왠지 가깝게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걸 두고 저는 '심미心美적 거리'가 가까운 '벗'이라고 표현합니다. 본래 '심미審美'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아름다움을 살펴 찾음'을 뜻하지만, 제가 말하는 심미적 거리는 '아름다움을 좇는 마음'이 같은 사람. 그 정도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물론 상대의 감정도 그런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이지 않을까 싶네요. 책 한 권을 자주 읽으면, 책 속 작가와 조금씩 가까워지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좋은 벗이 '책이라는 편지'를 통해 제게 '안부'를 전한다고 여깁니다. 최근에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자주 만나지만, 오랜 시간을 기준으로 본다면 박준 시인이 그런 작가 가운데 한 분이지요. 최근에는 하루가 바뀌는 시점, 자정부터 두 시까지 라디오를 통해 만날 수 있으니. 물리적 거리가 좀 더 가까워졌구나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그 무렵에 호수공원 산책을 자주 나갑니다. 늦봄부터 초겨울까지는 걷다가 어딘가에 앉아서 잠시 책을 읽곤 하지요. 요즘 그랬다가는 엉덩이가 의자에 꽁꽁 얼어붙어버리겠지만, 그래도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나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걷다가 책과 어울리는 공간...
<월든> 264~265쪽 '화이트 호수, 콩코드, 1900년 7월 16일' 中 뛰어가듯이 읽은 책은 쉽게 증발한다. 그건 마치 여행과 같아서, 한곳에서 오래 머무른 여행과 사나흘 정도 관광지를 돌며 기념사진을 남긴 것의 차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책은 다시 읽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내 안에 온전히 새겨지곤 한다. 소로의 <월든·시민 불복종>을 다시 읽으면서, 천천히 조금씩 하루일기에 옮겨놓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그날은 인터뷰를 마치고 와서 파김치가 된 날이었는데. 퇴근 시간은 팬데믹과 관계없이 붐볐고, 기억은 아주 오래전 출퇴근 전쟁을 하던 그곳으로 나를 되돌려 놓았다. 사람과 사람의 틈이 좁은 지하철에서 나는, '아, 그래. 이렇게 치열하게 살던 시절이 있었지.'라고 혼잣말처럼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더운물로 몸을 닦고, 커피 대신 홍차를 내렸다. 그러고는 얼마 전 읽은 <월든>을 펴고 읽다가, 책 264쪽에서 잠시 멈추었다. 그러고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시민 불복종>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전과 다른 것은 '책 속 문장을 하루일기에 조금씩 옮겨놓는 과정을 추가'했다. 타인을 위함보다 내게 유용한 일이기 때문인데. 무엇보다 이 책은 한번쯤 완독할 만한다. 이유는, 책을 읽은 사람은 모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홍차와 <월든>은 왠지 좀, 닮았구나 싶었다. 모든 작가는 남의 삶에 대해 전해 들은 것...
햇살 좋은 겨울 아침 읽은 <월든·시민 불복종> 28쪽 中 아사벳 강에 비친 낙조, 콩코드, 1916년 7월 3일 어떤 날씨에서든, 낮이나 밤이나 어떤 시간이든 나는 시간을 잘 활용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를 막대기에 새겨놓으려 했다. 두 영원, 즉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라는 지점을 굳건히 딛고 서서, 충실히 원칙을 따라 가려 했다. <월든·시민 불복종> 28쪽 中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미국의 작가이자 사상가인데. 그가 쓴 <월든>과 <시민 불복종>을 책 한 권으로 만나는 건, 흥미롭다. 현대지성에서 펴낸 <월든·시민 불복종>은 536쪽에 달하지만, 소로의 인생과 그 삶 속에서 중요한 공간이 되었던 월든을 마주하는 건, 하나도 지루하지 않은 일이었다. 집 앞 호수공원을 자주 거니는 나로서는, 소로의 <월든·시민 불복종>은 읽는 동안 '월든과 호수공원이 중첩'되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현재라는 지점을 굳건히 딛고 서"있고 싶어했던 소로의 심정과 같은 마음일 때도 적지 않았다. <월든·시민 불복종>_헨리 데이드스 소로 지음_허버트 웬델 글리슨 사진_이종인 옮김_현대지성_초판 1쇄 2021년 12월 1일 지금으로부터 176년 전, 그러니까 1845년 봄. 소로는 도끼 한 자루를 빌려 월든 호수 옆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소로는 집을 짓고 2년 2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