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가을한 날엔 시와 함께~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주민현 <호두의 것>을 읽어본다.
흔들리며 피는 꽃
ㅡ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호두의 것
ㅡ주민현
역을 나오면서
호두과자와 땅콩과자 냄새가 좋아
엄마 생각이 난다
호두와 땅콩은 닮았고
땅콩은 호두와 불화해
종이봉투 안에서
볼온전한 김이 솟는다
이런 추운 날엔 다정한 불화가 좋아
세상의 불행은
불운한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고
세상은 불의로 인해 굴러가지
입속에서 여러번 구르며 잘게 부서지는 것
나는 쪼그려 앉아 호두를 깼을,
땅콩 껍질을 벗겼을
어떤 사람의 모습을 상상한다
호두, 누군가 심기로 결심하고 상상하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금 내 나이보다도 일찍 엄마가 되었고
여전히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사람
엄마가 떠나고
나도 떠난 세상을 종종 그려보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좋을지도
호두의 전부를 안다는 것
그것은 호두의 고통을 껴안아본다는 것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