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환경학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친구로부터 받은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1958년 1월 매사추세츠 주에 사는 허킨스라는 친구로부터 받은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는 정부 소속 비행기가 모기를 방제하기 위해 숲속에 DDT를 살포했는데 그 때문에 자신이 기르던 많은 새들이 죽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친구는 DDT를 사용한 당국에 항의했으나, 당국은 DDT가 무해하다며 항의를 묵살하고 만다. 이에 친구는 항의 편지를 신문사에 보냈고 그 사본을 레이첼 카슨에게도 보냈던 것이다. 편지에 실려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는 살충제의 사용 실태와 그 위험성을 조사한 후에 책을 집필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생물학자로서 가지고 있던 전문지식과 작가로서의 능력을 발휘하여 방사능 낙진으로 인해 심각해진 환경 문제의 복잡성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다. 더불어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되어가는 야생 생물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공개하였다. 생태계의 오염이 어떻게 시작되고 생물과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구체적으로 설명이 이어진다. 이를 통해 정부와 살충제 제조업체의 행태를 지적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을 환기시켜준다. 책이 출간된 이후, 미국 의회는 1969년에 국가 환경 정책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암연구소는 DDT의 암 유발 증거를 제시하면서 ...
어제 이 소설로 독서모임이 있어서 읽게 되었다. 최진영 작가의 대표작으로 2015년에 출간되었는데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상당히 독특하다. 구와 담이라는 남녀의 사랑이야기인데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남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감성적이면서도 연애 감성을 자극하는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이런 스타일이 20대의 감성에 맞는 걸까 궁금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먹는다는 소재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유사한 많은 컨텐츠들이 떠올랐다. 동일한 소재가 들어있지는 않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 때문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극히 폐쇄된 환경에서 누구와도 관계 맺기가 쉽지 않았던 여자 주인공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도 떠올랐다. 어제 토론한 바에 의하면 구는 그 나이 또래의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남자 정도로 그리 독특한 캐릭터는 아니라고 의견을 모았다. 슈퍼를 운영하는 부모님도 계셨고, 부모님이 사채 빚을 쓰고 갚지 못하게 되자 구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장에 취직하여 번 돈으로 이자를 갚아나갔다. 도망치듯 군대에 갔고 제대 후에도 공장에 취직하여 돈을 벌다가 30대 누나를 만나 의탁을 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하지만 담은 다르다. 담은 부모님 없이 할아버지와 살다가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이...
하루키의 소설 중 가장 흡인력이 있었던 작품을 골라보라면 나는 단연 <1Q84>를 고를 것이다. 세 권을 3일에 걸쳐 연달아 읽고 났더니 심지어 글을 쓸 때도 하루키 소설의 문장처럼 써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오마메와 덴고 두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각 장별로 교차하면서 진행하는 구성방식이라 단순 플롯보다 더 몰입해서 읽게 된다. 다음에 이어질 뒷 이야기가 궁금한데 계속 교차방식이라 한 템포 쉬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결국 650 페이지가 넘는 양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었다. 작가지망생 덴고가 꽉 막힌 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오면서 다른 세계로 접어든 아오마메와 천재적인 문학성을 가진 열일곱 소녀 후카에리를 만나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그의 앞에 '1Q84'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두 남녀의 아련한 첫사랑 이야기이면서 '1Q84'를 헤쳐나가며 겪게 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고 거슬러 올라가 이 소설을 읽었던지라, 이야기 구조는 여러 부분에서 겹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현실과 비현실이 넘나드는 구조가 비슷하고, 불가해한 소녀와 맺는 동지적 관계 등의 설정도 익숙했다. 이 소설이 다르게 느껴졌던 부분은 여주인공이 행하는 특이한 작업(여자들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 부분 등인데 이와 관련한 스토리 라인이 상당히 흥미롭다. 1984년도와 또 다른 '1Q84' 의 세계라는 서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를 방황하는 네 명의 남녀를 통해 삶의 의미와 무의미, 시간의 직선적 진행과 윤회적 반복의 의미, 우연과 필연,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 주제들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틀로 엮어 여러 다층적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잘 읽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후반부로 갈 수록 더 어려웠고, 두 세번은 더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네 명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자신을 운명이라고 믿는 여자를 부담스러워하며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는 토마시, 그를 끝까지 믿고 싶어하는 테레자, 자유로운 영혼의 사비나, 안정된 일상을 누렸지만 사비나에게 매료된 프란츠이다. 삶의 가벼움을 지향하는 사비나와 토마스, 이들보다 무거움을 지향하는 테레자와 프란츠로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나뉜다. 하지만 관계의 가벼움을 추구했던 토마스는 테레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동정과 연민으로 고통받게 되고, 가벼움은 무거움으로 바뀌게 된다. 토마시는 가벼움을 추구하며 살아왔지만 테레사를 만난 뒤 삶이 바뀌게 된다. 그동안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토마시는 여자와 섹스는 하지만 잠을 같이 자지는 않았다. 하지만 테레사와 아침까지 손을 잡고 잠을 자게 되며 테레사는 토마시의 인생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테레사는 무거움을 대표한다. 신분상승의 열망을 가졌던 테레사는 토마시...
<멋진 신세계> 읽다보면 이 작품이 1932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디스토피아 소설 중 가장 날카로우면서도 디테일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 소설이다. 풍자적이면서도 냉혹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이 현재보다 월등하게 발달한 이 시대에는 소수 권력층이 통제를 하며 안정된 사회를 구축하고 있다. 계급별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과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 간다. 이 사회에서는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굶주림과 실업, 가난도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도 없고, 전쟁도 없으며, 어디서든 청결하고 위생적이다. 예상 수명도 높다, 늙어도 표가 나지 않는다. 누구도 고독하거나 절망을 느끼지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즐겁고, 모두는 행복하며, 누구와도 서로 섹스를 하며, 모든 사람들은 모든 가능한 것들을 소비하는 삶을 산다.모두와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정말 유토피아로 들린다. 약간의 우울함이 느껴지면 '소마(Soma)'라는 마약을 먹는다. 이 약은 기분을 흥분시킬 뿐 아니라 마음을 안정시키고 편안한 환각 상태를 유발한다. 하지만 이 멋진 신세계는 두렵고 공포스럽다. 이런 미래에서 살고 싶다기보다는 그 세계에는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이 든다. 안정된 세계, 모든 것이 통제된 세계, 과연 여기에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된다.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그들의 삶의 형태가 ...
나는 책을 깨끗하게 보는 편이다. 띠지도 떼지않고 읽고, 처음 샀던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독서대에 세워 두고 오래 읽거나 하면 책장 사이가 벌어지기 때문에 그럴 경우는 반대방향으로 뒤집어서 두꺼운 책 사이에 눌러놓는다. 줄을 긋거나 접거나 하는 일도 당연히 없다. 책을 읽으면서 하는 행동 중 책 날개로 읽은 페이지에 끼워놓거나 읽던 페이지 그대로 책을 뒤집어 놓는 걸 보면 질색을 한다. 책을 깨끗하게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중고서점에 팔기 위해서이다. 가장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최상을 받을 수 있다. 본격적으로 파는 건 이사를 갈 때이지만 가끔씩 지나가는 길에 들러 팔 때도 있다. 알라딘 중고서점 일산점 책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책을 팔기 위해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본다. 두 권씩 있는 책을 골라 그 중 세 권을 들고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이 별로 없다. 어떨 때는 대기를 한참 동안 해야되는 경우도 있는데, 바로 내 차례가 되어 책을 올려둔다. 내 눈에는 당연하게 최상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권은 상이다. 다른 한 권은 최상이고, 또 다른 한 권은 재고가 꽉 차서 일시적으로 매입 불가란다.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일시적 매입 불가 "아, 이 책은 왜 상인가요?" 내 눈엔 아무 문제가 없어보이건만. "책 아랫쪽 부분에 얼룩이 있어요." 그러고보니 그런 것 같다. 두 권 중 더 깨끗...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엄청난 베스트셀러였고, 동명의 소설을 만든 연극도 보러 갔고, K-문학의 시대에서 힐링소설의 예시로 강의도 했건만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본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주로 나눈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이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셀링 포인트는 무엇인가에 대해서와 이 책에서 인물들이 보여준 선의와 호의, 친절에 대해서이다. 소설은 염여사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지갑을 서울역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이어 걸려온 한 통의 전화와 어눌한 말투. 서울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독고가 염여사의 지갑을 찾아주게 된다. 염여사의 표현에 의하면 독고는 '경우가 있는' 노숙자였다. 염여사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그에게 날마다 편의점으로 와서 도시락을 먹으라고 호의를 베푼다. 그는 매일 저녁 8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이 폐기처분되는 시간에 찾아와 산해진미 도시락을 먹는다. 새 걸 먹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알코올성 치매로 말투가 어눌하고 기억력도 현저하게 떨어져있다. 야간 알바가 그만둔 뒤 염여사가 밤에 편의점에 나와있었는데 위기에 처한 그녀를 돕는다. 이 일로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편의점에서 일을 하게 된 독고로 인해 주변 인물들에게 새로운 변화가 하나둘씩 이어진다. 편의...
뒤늦게 읽은 <불편한 편의점> .책을 읽고나면 띠지에 옥수수 수염차 콜라보 이벤트가 왜 나왔는지 이해가 된다. 책도 PPL시대인가 싶은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정보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첫 장면부터 흥미로웠다. 염여사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파우치를 서울역에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이었다. 곧이어 걸려온 한 통의 전화와 어눌한 말투. 서울역 노숙인인 독고와 푸른 언덕 청파동 편의점 주인인 염여사의 만남은 아주 흥미로웠다. 힘겨운 세상, 엇갈린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보통 삶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소설이다. 서울역에서 노숙인 생활을 하던 독고는 염여사의 표현에 의하면 '경우가 있는' 노숙자였다. 염여사의 지갑을 주워서 찾아주었고 염여사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그에게 매일 찾아와서 도시락을 먹으라고 호의를 베푼다. 그는 매일 저녁 8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이 폐기처분되는 시간에 찾아와 산해진미 도시락을 먹는다. 새 걸 먹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알코올성 치매로 말투가 어눌하고 기억력도 현저하게 떨어져있다. 야간 알바가 그만둔 뒤 염여사가 밤에 편의점에 나와있었는데 위기에 처한 그녀를 돕는다. 이 일로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편의점에서 일을 하게 된 독고로 인해 주변 인물들에게 새로운 변화가 하나둘씩 이어진다. 편의점 알바를 하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시현에게는 자신에게 바코드 찍는...
<총균쇠> 개정판 앞에 실려있는 2023년 특별 서문에 보면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님이 그동안 대중들을 위해 써온 책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현 세계를 짓누르는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게 하기 위해 책을 써왔는데,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음을 밝힙니다. 단, 위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범세계적으로 행동에 나서야함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웁니다. 위기는 늘 닥치는 것이고, 문제는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나가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대변동>을 쓴 이후에 내한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님 강연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국가의 위기별 대처상황과 개인의 위기 대처상황은 비슷한 단계를 거치는데 먼저 위기를 인정하고 책임을 수용한 후 선택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한가지 해결책으로는 위기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해결책을 통해 인내심 있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한 자세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총균쇠>는 어떤 나라는 왜 발전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했는가라는 인류의 발전과정이 각 대륙에서 어떻게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밝혀주는 책입니다. 이는 각 민족의 우월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차이에서 온다는 것이 책의 핵심내용입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환경의 차이가 문명의 발달에 얼마나 영향을 크게 미치는지 알게 됩니다. ...
<총균쇠>는 어떤 나라는 왜 발전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못했는가라는, 인류의 발전과정이 각 대륙에서 어떻게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를 밝혀주는 책이다. 이는 각 민족의 우월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차이에서 온다는 것이 책의 핵심내용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환경의 차이가 문명의 발달에 얼마나 영향을 크게 미치는지 알게 된다. 아프리카인을 포함한 민족들은 유럽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부와 힘에서 유럽, 동아시아, 북아메리카에 비해 훨씬 뒤처져 있다. 인류의 발전은 잉여식량이 발생하면서 사회는 계층화되고 조직화되었다. 식량생산은 간접적으로 총기, 병원균, 쇠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선행조건이었다. 잉여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정복전쟁을 하는 병사를 먹여살리는데 쓰일 수 있었다. 전쟁터에 지속적으로 군대를 지속시킬 수 있게 됨으로써 정복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특히 동식물의 가축화와 작물화는 더 많은 식량과 조밀한 인구를 가능하게 하였다. 그 결과 잉여 식량이 생겼고 또한 일부 지역에서는 동물을 이용하여 그와 같은 잉여 식량을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났다. 두 가지는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화되고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경제적으로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형 사회로 발전하는데 필요한 선행조건이었다. 그러므로 가축화 작물화된 동식물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유라시아에서 제국, 문자, 쇠 무기 등이 제일 ...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을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는 능력, 친화력에서 찾습니다. 두 진화학자는 "적자생존은 틀렸다.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였다."라고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다정함을 무기로 삼아 번성해온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와 미래를 살펴봄으로써 분노와 혐오의 시대를 넘어 희망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따뜻한 주장을 펼치고 있어서 좋았는데요. 특히 보노보나 다른 영장류에 대한 분석과 설명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처음 접한 내용) 친화력과 '자기 가축화'를 연결시켜 설명한 부분이었는데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가축화'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게 읽었는데 이 책에서의 '자기 가축화'와는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자기 가축화는 친화력을 향상시키는데 어떤 동물이 가축화될 때는 서로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많은 요소가 변화를 겪게 됩니다. 가축화징후라고 불리는 현상의 변화 패턴은 얼굴형, 치아 크기, 신체 부위별로 각기 다른 피부색에서 나타나는데 호르몬과 번식주기, 신경계에서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작은 뇌, 두개골이 작아지고, 얼굴이 작아지는 현상이 이러한 자기가축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요즘 ‘다정’이란 말이 시대적으로 화두인 것 같습니다. ‘친절함’, ‘우호적인’이라는 단어에 비해 ‘다정함’이 불러일으키는 타인에 대한 따뜻함과 친화력인 느껴지는데요. 타인에 대한 ‘...
얼마 전 하루키의 성실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하루키 소설의 매력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이다. 요리나 옷차림, 외모나 섹스 등 무엇을 묘사하든 최선을 다해 아주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읽는 재미가 있는 것이다. 묘사를 이렇게 성실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최대의 장점인 것 같다. 아무리 평범한 것에 대한 묘사라도 하루키가 하면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받는다.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다보면 생각보다 줄거리를 기억 못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가독성이 좋다. 아. 이 문장이 여기서 나왔구나 싶은 것도 많다. 예를 들면,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남자라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나 "봄날의 곰만큼 좋아",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곁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 줄래?" 같은 말들은 예전에 읽었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1990년대에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담론보다는 개인적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199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겪은 누군가를 잃거나 떠나간 사람에 대한 추억은 근원적인 상실감과 아픔을 간직하게 한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근원적 상실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떠나는 내적 여행"이라는 핵심적인 모티브는 당시를 살아가는 ...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 시기가 도래하면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 하루키를 지금의 위치로 자리매김한 책은 단연 <상실의 시대> 입니다.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 출간되었죠. 나중에 다시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되었지만 인기가 덜해 다시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 바꿔 달고 나왔습니다. 아마 당시에 하루키 열풍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이 훨씬 더 친숙할 것입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상실의 시대>를 쓸 무렵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와 있는데요. 이를 장편으로 확대해 <상실의 시대>에는 좀 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을 합니다. 아마 당시에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담론보다는 개인적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199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겠죠.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를 끝으로 학생운동도 마지막이 되어가는 시기였으니까요. "근원적 상실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떠나는 재생의 여행"이라는 핵심 모티브가 그 당시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크게 어필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상실의 시대>는 일본에서도 6백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웠고, 우리나라에서도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세의 자전적 경험이 짙게 배어있는 작품이다. <데미안> 에 싱클레어와 데미안이라는 두 명의 소년이 나오듯이 이 소설에는 한스와 하일너라는 소년이 등장한다. 한스와 하일너 두 인물은 헤세의 모습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소설에서 학교와 교사는 인간의 창의성과 자유로운 의지를 짓밟고 규격화한다. 헤세는 규격화된 인물을 키워내는 제도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한스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는 그가 태어난 슈바벤 지방에서 유일하게 똑똑한 소년이었다. 그는 똑똑한 소년이 걸어가야 하는 길 즉 신학교에 들어가 교사나 목사가 되어야 하는 길을 따라가야만 했다. 그는 시험준비를 위해 낚시와 산책 등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멀리한채 날마다 밤늦게까지 공부를 한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도 매일 공부를 하지만 왜 그렇게 공부를 해야하는지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하일너는 시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존재이다. 공부만 하던 한스는 하일너와 가까워지게 되며 내적 갈등을 겪게 된다. 그는 점점 공부에서 멀어진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시 처벌의 기구인 가정, 학교, 군대, 병원, 공장 등을 분석하고 사실상 근대사회를 감금사회, 관리사회, 처벌사회, 감시사회로 설명하였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규격화된 인물을 만들어내는 학교의 기능이 한스의 영혼을 망쳐가는구나 라는 생각...
올 여름 두 번을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중도포기했던 <역행자>를 오늘 다시 끝까지 읽어보았다. '역행자'란 타고난 유전자와 본성을 역행해서 경제적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사람을 뜻하고, 이와 반대로 본성에 따라 결정된 인생을 사는 사람을 '순리자'라고 말하고 있다. 역행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설명이 단계별로 제시되어 있는 책이다. 7단계 중 자의식 해체, 뇌자동화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저자가 추천한 책 중 <클루지>는 최근 역주행 하는 것 같다. <생각에 관한 생각>이나 <정리하는 뇌>의 경우에는 나도 흥미롭게 읽었다. 뇌의 작동 원리와 활성화 시키는 방법 등에 관심이 많아서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최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도움이 되는 내용만 흡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마음을 괴롭히는 게 있었는데, 그 정체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젊은 나이에 성공한 저자들이 쓴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항상 좀 힘든 편인데 왜 그런가 생각해보았더니 인생이란 통제 가능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 때문인 것 같다. 운이 좋아서, 남들보다 노력해서, 시류를 타서, 사람들의 니즈를 읽을 수 있어서 등등의 여러 이유로 성공을 거둔 이들이 존재하고, 그들이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나누거나 자신을 롤모델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흐름같기도 하다. 하지만 인생이 과연 그렇게...
아이가 학교 국어 시간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다. 4차시에 걸쳐서 읽고 있는데 책을 빨리 읽는 편인 아이는 1차시만에 다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연달아 한강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다. 오늘은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더니 이어서 <검은 사슴>을 읽겠다고 한다. <소년이 온다>는 내 인생책 중 한 권이다. 한 때 소설을 읽지 않다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국 소설을 읽게 되었던지라 애착이 가는 소설이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독서를 좀 해왔던 친구들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내용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한 사람의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되지 않고, 각 장마다 이야기의 화자가 바뀌니 낯설었던 것이다. 공감한다. 소설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시점을 달리하여 서술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누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서술되는지 잘 몰랐으나 3장이 넘어가게 되니 각자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구나 이해가 되었다. 만약 이 소설이 동호나 은숙과 같이 한 사람의 시선으로만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나갔다면 소설이 주는 감동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된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하...
이 책은 최근 10여년간 읽었던 책 중에서 읽고 가장 많이 울었던 소설입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하고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됩니다. 동호는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것 같은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힙니다. 눈을 감고 있던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새 같은 무언가가 문득 빠져 나갔다. 순식간에 주검이 된 주름진 얼굴을 보며, 그 어린 새 같은 것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몰라 너는 멍하게 서 있었다. 지금 상무관에 있는 사람들의 혼도 갑자기 새처럼 몸을 빠져나갔을까. 놀란 그 새들은 어디 있을까.pp 22-23 고등학교 3학년때 5.18을 겪었던 은숙은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서대문경찰서에 끌려가 빰을 맞습니다.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며 노조활동을 하다 쫓겨난 선주는 경찰에 연행된 후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대학생 진수는 모나미 볼펜으로 고문을 당하고 수감생활을 하다 출소 후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자살하고 맙니다. 소설을 읽으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이...
정유정 작가의 소설은 출간되면 바로 읽는다. 기다렸다가 읽는 소설이다. <종의 기원> 이후의 신작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삼분의 일까지 읽었을 때는 별 재미가 없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주인공인 유나에게 궁금증이 생기거나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워서였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소설은 유나의 언니 신재인, 유나의 남편 차은호, 유나의 딸 지유라는 세 사람의 시점으로 사건을 서술해나간다. 화자를 바꾸어가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것은 전작 <28>에서도 있었던 구성이라 낯설지 않았는데 주인공인 유나의 시점으로 사건이 서술되지는 않는다. 맨 뒤의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일부러 그랬다고 한다. <종의 기원>에서 1인칭 시점으로 사이코 패스인 유진의 상황을 드러내는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그러니 주변 인물이 느끼는 유나에 대한 감정들이 좀 더 증폭되어 다가온다는 장점은 있으나 인물의 특징을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렸다. 작품의 제목이 완전한 행복이듯이 이 소설에서 행복이라는 주제는 전면에 드러난다. 유나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한다. 행복은 뺄셈이라고,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고 말한다.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읽으니 더욱 섬뜩하게 다가오는 말이었다. 심리학책을 보면 사이코패스의 특징 중 하나로 다른 사람을 잘 조종한다고 나온다. 죄책감이나 공포를 밑바탕에 깔고 주변사람을 조...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명체의 시작을 작은 분자 집합인 원시 수프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한다. 초기에 단순한 자기복제자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돌연변이들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주변 환경에 적합하게 유전자가 변이된 개체들은 살아남아 진화해 나갔고, 그렇지 않은 개체들은 도태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도킨스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을 위한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상당히 절망스럽다. 생존기계에 불과하다니 인간의 존재 의미가 그것밖에 아니냐는 절망스러운 하소연을 쏟아낼만하다. 이 의견에 대한 다양한 반박도 있다. 강신주의 책 <철학 VS철학>에 보면 리차드 도킨스를 칠레의 신경생물학자 움베르토 마뚜라나와 비교해서 설명한다. 신경생물학자 움베르또 마뚜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공저한 <앎의 나무> 라는 책에서 저자들은 생물이 자기의 구성요소들을 스스로 생성하고 유지하는 '자기생성체계'라고 본다. 생물이 자기생성의 역동성을 바탕으로 각 종마다 독특한 자기의 환경을 산출하며 이것이 바로 생물학적 인지활동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도킨스가 말한 ‘생존 기계’로서의 인간은 오로지 유전자를 전달한다고 보지만 이들은 생명체는 구조적으로는 닫힌 존재이지만 다른 존재와의 구조접속을 통해 더 큰 체계를 만들어낸다고 본다. 도킨스는 유전의 영역을 생명의 본질적인 면에서 인간 문화로까지 확장한 이른바 밈(Meme)이론, 즉...
올해의 책을 뽑을 때 주저하지 않고 선정했던 책 몇 권이 있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도 그 중 한 권이다. 처음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보고는 어떤 내용일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물고기는 존재하는데, 왜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궁금증이 생겼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글의 구성 방식이 절묘하게 섞이게 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과학에세이지만 철학책이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깊은 깨달음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여러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경계를 넘어서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책.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류 분류학자의 삶의 방식을 통해 혼돈과 질서, 삶의 의미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이 뒤집히는 부분이 있고, 그게 책의 메시지와 직결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유명한 생물학자로 어류를 분류한 학자였고, 스탠포드 초대 총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수집한 물고기들을 분류하며 질서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느끼던 학자였는데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나면서 수집한 병들이 모두 부서지게 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여기에서 절망하고 좌절할텐데, 그는 물고기의 피부에 학명을 직접 바느질하는 의지를 발휘한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이 인상적인데 과학기자인 저자의 아버지는 세상은 의미가 없고 혼돈뿐이라고 말을 한다...
3월 만물만궁에서 소개한 책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니다. 책은 한 달 전에 정했는데 그 이후로 책에 대한 인기가 더욱 급상승 중입니다. 먼저 읽으신 분들로부터 정말 좋다고 추천받아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 "뭐지? 별 느낌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하면서 좀 지루해했습니다. 그러다가 중반 이후 넘어가면서 후반부에서는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어집니다. 초반에 느껴지는 지루함을 조금만 건너 뛰면 뒷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으로 펼쳐지는데요. 과학에세이 논픽션이면서도 후기글을 찾아보면 [스포주의]라는 표시가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에세이에서 스포가 왜 있지?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읽은 분들이 이 책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접하지 말고 읽으라고 권하시더군요. 참고로 저는 내용을 숙지한 다음에 읽었는데 그래도 재미있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첫 출판물이라니 더욱 놀랍습니다. 삶의 의미, 질서와 혼돈, 기준와 분류 관련한 본원적 질문을 이끌어내는 방식도 고급스럽고, 글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류 분류학자의 삶의 방식을 통해 혼돈과 질서, 삶의 의미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이 뒤집히는 부분이 있고, 그게 책의 메시지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유명한 생물학자로 어류를 분류한 학자였고, 스탠포드 초대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는 수집한 물...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가 쓴 <미움받을 용기>가 전 세계에서 1000만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는데, 출간 10주년을 기념하여 <미움받을 용기> 2부작 한정판 북케이스 세트가 출시되었다. 미움받을 용기 2부작 한정판 북케이스 세트 2014년 출간 이후 국내 판매가 200만부가 되었다니 그야말로 엄청난 베스트셀러이다. 1980년대에는 100만부 이상 팔리는 책이 여러 권 나왔지만(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던 시대였으니) 이제는 1만부 판매도 쉽지 않은 시대에 200만부라니 대단하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아들러의 심리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인데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부정하고, 사람은 현재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목적론' 을 주장하며 주목을 받은 책이다. 책의 제목만으로도 하나의 상징이 된 책이다. 제목만 읽어도 힐링되는 느낌이 있다. 맨 앞 서두에 저자들의 말이 실려있는데 <미움받을 용기> 시리즈가 전세계적으로 많이 팔리긴 했는데 초기부터 반향이 컸던 곳은 한국과 일본이라고 한다. 그 이유를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일본인의 경우 회사조직 속 대인관계(충과 의)에 시달리고 한국인은 가족관계와 사회 규범 자체(효와 예)에 대한 고민이 컸는데 아들러의 가르침이 이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 책에는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사상이 5가지...
책과 영화사이 7월 모임은 <바깥은 여름> 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으로 독서모임을 가졌다. 이 소설은 남편을 잃은 아내의 이야기이다. 학교 선생님인 남편 도경은 물에 빠진 제자 지용을 구하려다 사망한다. 슬픔에 잠긴 '나에게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촌언니로부터 전화가 온다. 여행을 가서 집이 비니 와서 편히 쉬었다 가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스코틀랜드로 떠난다. 그 곳에서 몸에 피부 질환이 생기는데 이를 검색해보니 장밋빛 비강진이라고 한다. 약을 사서 발라보지만 계속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도경을 떠나보낸 슬픔이 몸으로 나타나 퍼져나가는 것일까. 그 곳에서 유학중인 친구 현석을 만나 식사를 하는데 그는 도경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일부러 밝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도경과 헤어졌다고 말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받지 못한 위로를 시리에게서 받는다. 위안이 된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시리가 해주는 답변에서 그녀는 '예의'를 느낀다. 귀국 후 우편함에 배달된 지용의 누나 지은의 편지를 읽게 된다. 동생 지용이 죽어가던 순간 마지막으로 잡은 게 도경의 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지은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눈물을 쏟는다. '나'는 지은의 편지를 받고 나만 이런 고통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동생을 잃은 지은이가 보낸 편지에서 같은 아픔을 가진 이의 마음을 전해받았기 ...
김애란 작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은 작가의 전작들보다 훨씬 더 무겁고 슬픈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단편집이다. 첫번째 소설 <입동>에서부터 마지막 소설 <어디로 가고 싶은신가요> 까지 읽다보면 한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입동>은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이고, <어디로 가고 싶은신가요>는 남편을 잃은 아내의 이야기이다.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의 슬픔을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하지만 작가는 다른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바깥에서 그 슬픔의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그들에게 한발짝 다가가려는 시도를 한다. <입동>의 아내가 오래동안 미루었던 도배를 하려고 벽에 붙은 수납함을 밀고 벽 아래에서 아이가 쓰다 만 이름을 발견하고 울음을 터트릴 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남편이 구하려다 죽은 지용의 누나 지은이가 보내온 편지를 주인공이 읽을 때, 책을 읽는 나도 그들의 슬픔을 함께 하게 된다. "목울대에 따갑고 물컹한 것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처럼 나의 목에서도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넘어온다. 나는 삶에서 겪는 슬픔에 대해 이렇게 쉽게 넘겨버리지 못하게 묘사해주는 작가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두 편의 소설은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오르게 한다. 세월호 사건에서 일부의 어떤 사람들은...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 시기가 도래하면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 하루키를 지금의 위치로 자리매김한 책은 단연 <상실의 시대> 입니다.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 출간되었죠. 나중에 다시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되었지만 인기가 덜해 다시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 바꿔 달고 나왔습니다. 아마 당시에 하루키 열풍을 기억하시는 분들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이 훨씬 더 친숙할 것입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상실의 시대>를 쓸 무렵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이 소설의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은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와 있는데요. 이를 장편으로 확대해 <상실의 시대>에는 좀 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을 합니다. 아마 당시에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담론보다는 개인적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199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겠죠.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를 끝으로 학생운동도 마지막이 되어가는 시기였으니까요. "근원적 상실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떠나는 재생의 여행"이라는 핵심 모티브가 그 당시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크게 어필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상실의 시대>는 일본에서도 6백만 부의 판매 기록을 세웠고, 우리나라에서도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
의사이면서 문학적인 글쓰기를 한 작가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여러 명이 스치고 지나가지만 단연코 한 사람을 고른다면 올리버 색스를 고르겠습니다. 그의 글에 대한 평가로 뉴욕 타임스는 '의학계의 계관시인'으로 부를 정도였는데요. 올리버 색스는 1965년 미국 뉴욕의 베스에이브러햄 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그가 남긴 작품 중 절반 정도는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있지 않은데요.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 중 널리 대중에게 알려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기이하고 다양한 신경장애 환자들의 임상사례를 탁월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이야기함으로써 인간의 뇌에 관한 현대 의학의 이해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한 신경의학의 고전입니다. 여느 의학서나 과학서와 달리 인간에 관한 깊은 신뢰와 존엄성을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예술가들에게까지 깊은 영감을 줘 희곡과 오페라로 각색되어 극장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신경장애를 겪는 환자들을 만나서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어떠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로 기록하였습니다. 병이나 증상 그 자체보다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냅니다. 특히 “나는 인간이 어떤 부분을 상실하거나 손상당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겨내고 새롭게 적응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이 감동을 줍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